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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붓다,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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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2-04-29 12:43 조회1,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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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1. 라훌라를 가르침

 - 거짓말하는 라훌라에게 발 씻은 물로 설명함: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M61)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에게 수행자의 덕성은 이와 같이 뒤집혀 없어진다.”(M61).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데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는 어떠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라도 못할 바가 없다

 

2. 나 자신도 중생이다.

 

- 중생이라는 말은 타인만 지칭하는 것일 줄 알았는데 자신도 중생이다.

  중생에는 자신도 포함되는데, 중생은 다른 사람으로 생각함,

  이 몸뚱아리가 중생이라는 말은 자비심에 대한 것으로, 무의미한 고행, 고행을 위한 고행에 대한 거부를 말함.

  => 온 중생에 대한 자비심은 자신도 포함된 것입니다

- 보살행은 온 중생에게 자비심을 내야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몸조차도 돌보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익되는 삶을 산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3. “자연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

 

 아비담마에 따르면 탐욕은 불선심(不善心)이다.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어느 수행승이 무심코 가던 길을 멈추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모두 의도가 개입된 것이

 다. 특히 하늘의 구름을 한참 동안쳐다보았다면 탐욕이 마음이 된 것이다. 쳐다보고자 하는 갈애가 생겼기 때문이다.

 

-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어떤 수행승이 무심코 쳐다보았다면 이는 탐욕이 된다. 왜 그러냐면, 그 순간에 사띠를 놓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탐욕

  은 불선법이고 사띠는 선법이다. 자연 풍광에 감탄하는 것은 탐욕'은‘자아에 대한 집착이다.

 

“자연을 인격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자연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 자연을 자아와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그 느낌 과 감정을 자아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를‘자아이론에 대한 집착(attavādūpādānaṃ)’이라고 말한다. 오온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수행자는 하늘을 함부로 쳐다볼 수도 없다. 수행자는 함부로 자연풍광을 경탄할 수도 없다. 수행자는 함부로 먹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알아차림 하면 문제가 없다. 하늘을 쳐다볼 때 무심코 쳐다보면 허물이 되지만 의도를 알고 쳐다보면 업이 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경탄할 수 있지만 그 순간 사띠한다면 탐욕이 되지 않는다.

  

4. 고행으로 환락의 흔적을 지우기

 

. 출가해서 정각을 이루기까지 6년 동안 고행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다름아닌 고독한 수행자를 말한다.

- 외로움과 고독은 다른 것이다. 누군가 외롭다고 말하면 타인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고독은 자신의 내면에 의지하는 것이다.

  고행자로서 청년붓다는 마치 외뿔을 가진 무소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서 갔다. 홀로 가는 고독한 수행자를 연상케 한다. 

 

-보살은 왜 그토록 극심한 고행을 했을까?

“고행을 통해서 환락의 흔적을 지우고자 했기에, 고행이 중요한 것이었음.”

  죄를 지은 자는 고행을 통해서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가 있는데, 자신의 몸을 학대에서 죄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 부처님이 고행한 것은 깨달음의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 나중에 무익한 것임을 알았지만 적어도 출가하기 전의 환락에 대한 업은 씻어 낼 수    있었다고 본다. 이런 것으로 본다면 보살의 고행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5. 고행 중에서 가장 힘든 고행은 무엇일까?

 

. 고행 중에서 가장 힘든 고행은 무엇일까?

  - 의식주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먹는 것임.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늘 먹는 것에서 적당량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한끼만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부처님은 세 가지만 지키면 해탈의 조건을 갖춘다고 했다. 그 세 가지란 무엇일까?

    니까야 도처에서 발견되는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하는 것과 음식을 먹을 때에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과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이

    다.”(S35.239)라는 가르침을 말한다. 이 세 가지 원리만 지키면 해탈이 가까이 있음을 말한다.

 

 - 오늘날 자본주의는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것 같다. 모두 먹는 선수가 되는 것 같다. 마치 먹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대체 자본주의의 끝은 어디일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려면 고행의 연속이다. 죽어서나 끝나는 것이다.

 

6. 왜 고행을 하는가?

 

 -“고행에는 1)감관의 수호, 2)두타행, 3)정진, 4)극단적 고행이 있다. 이 가운데 극단적 고행 은 번뇌를 제거시키지 못한다.”(Srp.I.94)

    네 가지 고행에서 ‘극단적 고행’은 번뇌를 제거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부 처님이 출가하여 정각을 이루기까지 목숨을 건 6년 간의 고행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나머 지 세 가지 고행은 번뇌를 제거시킬 수 있는 고행이 됨을 말한다.

 

 - 불교에서 감각기관의 수호가 고행이고, 정진하는 것이 고행의 개념으로 보는 것은 놀랍다. 이런 가르침은 니까야 주석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해탈에 도움이 되는 세 가 지 원리, 즉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하는 것과 음식을 먹을 때에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과 깨어 있

   음에 전념하는 것”(S35.239)이 있다. 이 세 가지를 지키는 것도 고행.

 

11. 하루 한끼만 먹는다는 것

 

 하루 한끼 먹는 오후불식을 부처님도 장려함, 오후불식에 대한 근거가 되는 경으로,

“수행승들이여, 나는 하루 한 끼의 식사로 산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하루 한 끼의 식사로 살면서 병이 없고 건강하고 상쾌하고 힘이 있고 안 

  온한 것을 즐긴다. 수행승들이여, 오라. 여기 그대들도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길 바란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도 하루 한 끼의 식사로 살면

  서 병이 없고 건강하고 상쾌하고 힘이 있고 안온한 것을 즐기기 바란다.”(M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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