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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붓다,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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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2-05-03 12:58 조회1,4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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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오, 진리의 기쁨이여!

 

 

1.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일어나지 않으리

 

.아트만: “진정한 자아를 찾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힌두교.”, 붓다의 가르침에서 진짜 나, 참나와 같은 자아는 없다.

.중도: 불교를 포현하는 대표적인 가르침이 됨(초기불교는 그렇지 않지만)

- 환락과 쾌락은 줄을 너무 느슨하게 vs 고행은 줄을 너무 팽팽하게

- 반반이 아니라,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상황(상태).삶과 죽음 사이, 성과 속 사이

 

. 수행을 위하여 생명력이 넘치는 장소 물색

-장소 물색: 나무(생명, 봄의 기운을 상징함)아래 동쪽(해뜨고 바람과 공기가 운행, 천지만물을 살림)을 향하여 않음, 

  길상초를 깔고 않음(길상한 초)

=> 불교는 니힐리즘이 아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을 찾음,

 

. 목숨을 건 정진

“지금부터 궁극의 지혜를 얻지 않으면 결단코 이 가부좌를 풀지 않겠다.”라고 하늘과 땅에 사자후를 토함

.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자리에 일어나지 않겠다고 다짐. 용맹정진에 대하여 “이러한 정진에서 나오는 바람은 흐르는 강물조처 마르게 할 것이다. 이처럼 용맹을 기울이는 나에게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빠다나경, Stn.433)

 

. 고타마가 마왕을 불러냄:

- 욕, 색, 무색계에서 욕계 지배자 마왕을 꺽어야 한다고 생각함. 욕망의 메트릭스에서 욕계를 지배하는 마왕과 정면

   대결을 하기 위해 마왕 불러냄,

  마왕은 싯달타가 자신의 세상인 욕망의 메트릭스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을 깨닫고 이를 붙들기 위해 마왕의 딸들을 보내 유혹.

 

-‘인간은 기본적으로 성적욕망이 일어나도록 세팅된 것 같다’- 욕계중생이기 때문.

->자신의 욕망의 뿌리와 마지막 싸움을 하고, 이로부터 벗어날 것임을 다짐함

 

. 마라와의 싸움: “차라리 나는 문자풀을 걸치겠다. 이 세상의 삶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 가! 내게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숫따니빠따, ‘빠다나경, ’Stn.440)

 

2. 번뇌의 고리를 끊어야

 

. ‘칼날에 발린 꿀’, ‘뱀의 머리’, 쾌락을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해야 함, 고통과 쾌락이 맞물리는데 이 고리를 끊어야 함 

  성욕에 불타게 되면 뜨거운 열로 바뀜, 서로를 불태움,

 

. 번뇌의 연료- 탐진치 -달구어진 숯불 덩어리 같음

. 욕계를 움직이는 연료- 분노와 쾌락, 머리와 몸에 열을 발생시키고, 자신을 불태우게 됨.

=> 몸과 마음이 따로 있지 않음, 까르마가 되어 또다시 자신을 망침

 

. 수많은 윤회를 하며 중생들이 흘린 피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윤회하고 윤회하면서 목이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상윳따니까야S15.13).

 

. 너가 세세생생 보시를 했다는 것은 누가 증명하는가?

“나의 증인은 의식을 갖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갖지 않은 대지이다.” 라며 항마촉지인.

“대지여, 나를 위하여 증언을 하라”=> 여신들이 홀연 모습을 보이며 “당신이 흘린 그 피가 대지에 젖어 있다. 

 마왕이여, 이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 증명함.

 

. 보살의 길: 초월의 길을 가면서 땀과 피를 대지에 많이 뿌렸을 것. 그래서 부처님은 땅을 가리키며 “이 대지가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라가 “슬픔에 넘친 나머지 옆구리에서 비파를 떨어뜨리고, 그만 그 야차는 낙심하여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숫따니빠따 빠다나경Stn.449)

  칠년 동안 쫓아다닌 마라가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 성경에서, 낙원에서 쫒겨날 때, 여성은 아이를 낳고 남성은 땅에서 땀을 흘리며 노동하리라.

   카인 형은 농민, 동생은 유목인, 신은 동생인 카인의 양 재물을 받음, 농경민과 유목민이라 는 문명의 대결 구조가 있음, 

  형이 동생을 죽이니 ..

  야훼가 말하길 “땅에서 아우의 피가 흘러 내리느니라, 땅들이 다 알고 있다.

  - 대지가 텅빈 공간이 아니라, 모든 지저분한 것도 흡수하지만 무한한 정보가 담겨 있음.

 인간은 땅과 대화를 해야 함 - 농경이 피의 역사와 시작함, 소유가 파괴적인 욕망과 함께 함

 

4. 붓다의 질문: “자아가 무엇인가?”

 

. 보시: 대승불교 육바라밀에서 구체적으로 등장, 보시는 모든 종교의 가장 보편적인 윤리.

-주는 것은 빛, 소유하는 것은 열, 불밝히는 자, 하늘에 있는 자...

- 최초의 동사는 “준다”

-해와 달과 하늘은 데바, 부모와 스승도 데바, 손님은 여행 정보를 주니 데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존재가 가장 높고, 많은 것을 가지거나 뺏는 자는 가장 낮은 자

  => 번뇌의 찌꺼기는 제거되었고, 마왕의 항복을 받았음. 본격적인 명상에 들어감

 

. 붓다의 질문

- “괴로움이 무엇인가?”, “고는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소멸되나?

 

. 고통과 환락 사이에 지복감을 느꼈던 12살 농경제때의 선정 경험

 

- 고통스러울 때 욕망이 더 타오름,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오는 즐거움이 아닌 것,

- 중생의 고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평안함을 얻음 선정,

드라마처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카다르시스를 느꼄, 분별심과 적개심을 만들어냄,

- 카타르시스를 통해 내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되면 자유인이 됨.

- 내가 믿는 종교지도자가 고통스럽게 죽었을 때 분노와 원한이 사무침, 지속적으로 전쟁을 하며 고통을 주고자 함

 

- 불교는 타인이 고통을 겪을 때 분노나 원한이 아니라 자비심을 말함

- 수행: 호흡을 봄, 생명의 존재, 존재와 세계에 대한 통찰

-> 시간과 공간의 분리가 사라짐, 누진통, 천안통, 숙명통 깨우침

=> 종교적, 영적 비전의 공통점, 황금율: 카렌암스트롱 “내가 당하기를 원치 않으면 남에게 하지마라” 

    불교는 황금률의 극치, 자신이 깨달은 것을 타인에게 적용, 우리가 경험한 일을 붓다도 경험하는 것이 놀라움, 

   까르마야말로 연기법의 핵심

 

5. 말과 행위와 생각이 업을 만듬

. 자아에 대한 집착이 무명의 출발 -고에서 해방

. 행위는 있지만 행위하는 자가 없다. 무상한 생성만 있음 -제행무상

 

생성과 소멸이 있을 뿐, 그것을 주관하는 주체는 없다- 제법무아, 그리하여 열반적정.

-아트만 자체가 없다. 자아가 없다 => 인류 지성사에 이러한 사상은 처음 열림,

-과학의 발전으로 이 주장들이 증명됨, 양자역학에 가면 주객이 나눠지지 않음,

 

. 인간은 왜 주체를 찾으려 할까?

- 자연 세계가 너무 압도적이라서 이를 신으로 명명함(예: 새벽의 신, 태풍의 신, 시간의 신...),

- 인간이 너무 약하므로 나보다 막강한 힘을 가진 어떤 존재들을 상정하고 믿음: 유일신

- 자연의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여기고, 인간의 몸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름 붙임(신인동 형설) ->자아에 대한 애착을 보여줌,       자신을 투사하려는 욕구, 자아의 확대 등으로 세계를 구성함,

 

, 자연을 주관하는 어떤 신에게 예배를 드리면 나도 불멸을 누릴 것이라 생각함,

  인간은 죽는데 폭풍, 번개 등은 죽지 않음, 자신이 죽지 않으려면 신에게 예배함,

  신전을 짓는데 서양에는 나무가 별로 없어 돌산에 신전을 지음

   => 온 마음을 다해서 자연을 숭배해주면 바다가 노하지 않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과 행복을 줄 것이다. 

        몇 천 년을 지나다보니 신은 내 마음 안에 있다고 알게 됨.

 

- 세계를 정복해도 마음이 불안한데, 마음이 편안하면 모든 것이 편안하게 됨, 마음이 편안한 것을 찾으면서 자아를 찾으려 함,    인도는 이러한 전환이 빨리 되고, 이 바탕에서 불교가 등장해서 “나는 없다,” “고정된 마음은 없다.”고 주장함

 

- 인정 욕구, 자신의 마음이 자아로 충만하고,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자아로 꽉 참, 악플 하나에도 견딜 수 없는 번뇌의 원천.

  예) 달마가 면백 7년 하나- 혜거가 “도를 알려 달라”며 팔을 잘라 던짐, 

      “왜?”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마음을 갖고 와봐, 그럼 내가 답을 줄게”

      => 마음에 실체가 없다는 것을 그대로 깨달음

-무상정득각: 자아가 있다면 계속 찾아가야 하지만, 자아가 없기에 ‘구경의 경지’에 이름

 

. 주는 자와 소유하는 자: 붓다는 보살로 살 때 주는 삶을 살았지만, 마왕은 소유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는 자는 빛이 되어 빛나고 소유하는 자는 덩어리가 되어서 열난다고 했다.

 

. 십바라밀

-하늘나라에 태어나려면 끊임없이 주어야 한다. 붓다도 보살로 살 때 끊임없이 주었는 데,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주었다.

- 십바라밀 중 보시바라밀(dāna-pāramī): 자타카에서는 “예를 들어 아내들, 아이들, 재물들을 기부하는 것은 일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손이나 발 등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우월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목숨을 보시하는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다.”(Jat.I.73)라고 설명되어 있다. 자기 목숨을 보시하는 것이 가장 수승한 초월의 길.

 

6. 스스로 깨어난 자가 됨, 부처가 된 후의 행동

 

- 진리가 진리임을 깨달은 자는 환희가 있음(괴로움의 근원은 무지, 무명에서 벗어나, 구 속에서 풀려남), 알면 행복함, 자유를 얻음, 대 환희, 기쁨이 증거이다. 천지도 진동을 함

 

. 진리가 얼마나 기쁨인지 너무 리얼하게 표현함

- 49일을 즐김, 나무를 옮겨 다니며 복습하며 기뻐함, 거룩한 분의 중요한 업적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보리수나무가 너무 

   고마워 일주일동안 눈을 깜빡이지 않고 응시함,

- 동그라미 안에 두고 밖으로 나가지 말라 -> 동그라미를 지워버리면 대자유를 얻음, 49일 째 세수를 함, 제석천이 나타나 약을

  주니 드시고 배변함, 칫솔질(영웅, 현자, 대스승의 너무 인간적임)

  =>  붓다가 되어도 삶이 계속 되어야, 일상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 여인이 죽기 전에 싯달타가 깨닫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분소의를 붓다께 바치고, 깨달으면 이 옷을 입어주기를 간청함,    죽을 때도 이렇게 선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 상인이 음식을 바침: 농업경제(바라문)와 상업 경제(상인)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줌.

 

* 불교는 붓다의 일생을 등한시함, 불교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갇혀 있을 수 없다는 생각, 불교는 무아를 강조하며, 

        이는 다른 종교와의 차이. 붓다의 생애를 주제로 교리를 전수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가장 좋은 교육과정이다.

 

. 12살 때 선정 경험: 고통을 공감할 때 자아가 해체됨,

  나와 벌레의 경계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면서, 무아상태가 선정으로 이어짐, 벌레 고통과 내가 공감을 할 때, 온전한 공감이 

  되려면 나와 그를 구별하려는 경계가 사라져야 함,  온전히 벌레가 되어야 함. 어떻게 그 고통에서 벗어날 것인가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음.

 

   예) 애가 너무 아플 때 엄마도 같이 아프거나 내 마음이 더 아픈 것은 애착, 자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자아가 견고해지는 것,          내가 사랑하는 애가 아프다. 경계를 벗어나면 내가 어떻게 애의 고통을 벗어나게 해줄까를 생각함, 

        고통 받는 사람 앞에서 의연함,

 

. 고통의 공감: 같이 고통을 받는 것은 자아가 견고한 것

- 사랑이 자아에 갇혀 있느냐, 이 사람을 고통에서 구할 것인가? 

   애가 아프면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며 왜 아빠가 안오냐며 분노가 더 치밀어, 나중에 남편 때문이라며 분노 쏟아냄,

- 내가 같이 울면서 내가 굉장히 선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사람에게는 도움이 안됨, 내가 돕지를 않고 그 사람을 분노함,

   실제로 도움은 안주고 가해자를 미워하게 됨- 자아가 망동함

 

. 아픔에 공감하라, 그러나 지혜가 필요하다.

- 무아. 나라는 것이 있으면 안됨, 고통을 느끼지만 나는 한없이 편해지며,  이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를 전념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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