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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년도 심포지엄 : 종교로 본 복지, 복지로 본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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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11-19 14:24 조회4,3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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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하반기 정기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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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 시: 2019년 11월 23일(토) 오후 1시 30분 
2. 장 소: 불교아카데미 대강의실
         (전철 3호선 동대입구역 2번 출구, 우리함께빌딩 2층) 

3. 주 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4. 주 최 : 종교문화비평학회 

5. 참가비: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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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발표
제 목: 종교사회복지의 과제와 전망
발표자: 윤용복 (한국종교사회연구소)
논평자: 이정기 (서강대학교) 


◈제2발표
제 목:19세기 독일 개신교의 사회복지사업
                             : 빌헬름 뢰헤(Wilhelm Lohe, 1808-1872)의 디아코니 사역을 중심으로 
발표자: 김태연 (숭실대학교) 
논평자: 서보람 (평택복지재단)


◈제3발표
제 목: 종교사회복지의 권력화에 대한 고찰 
발표자: 이혜숙 (불교재가연대) 
논평자: 박종수 (대구가톨릭대학교 다문화연구원) 


◈제4발표
제 목: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계발과 복지: 한국 개신교 공간을 중심으로 
발표자: 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논평자: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제5발표
제 목: 평화적 복지와 종교적 심층 
발표자: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논평자: 안신 (배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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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요지

 
 1. 종교사회복지의 과제와 전망

종교와 사회복지에 대한 일반적 논의는 많지 않은 편이다. 각 개별 종교의 입장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개념화기 필요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종교 사회복지와 일반 사회복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종교단체가 운영하기 때문에 종교사회복지인가? 아니면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종교적 요소가 들어가 있는 것인가? 또는 복지 이외에 다른 종교적 목적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규정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각 종교가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목적이 서로 차이가 있을 것이기에 확실한 선긋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반사회복지와의 차이를 검토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왜 종교가 사회복지활동을 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필요하다. 어떤 면에서 사회복지 서비스는 종교단체보다도 일반 사회복지단체가 더 나을 수 있다. 종교가 그것을 맡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필요할 것이다. 종교가 사회복지활동을 하면서 드러나는 문제점들, 특히 종교로 인해 드러나는 문제점들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종교가 사회복지에 참여하면서 종교만의 차별성을 부각할 필요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본다. 



2. 19세기 독일 개신교의 사회복지사업 : 빌헬름 뢰헤(Wilhelm Lohe, 1808-1872)의 디아코니 사역을 중심으로 

본 발표에서는, 내방선교라는 모토 하에 사회복지 사업을 추진한 빌헬름 뢰헤((Wilhelm Lohe)의 활동과 사회인식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이 인물의 활동 시기는 독일 개신교가 현재처럼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복지재정을 지원받아 디아코니(Diakonie) 사업을 꾸리기 바로 전,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국가 주도의 공공 사회복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이다. 소위 독일 개신교 디아코니 사업단의 주창자로 일컬어지며 교육자, 신학자로서 활약한 비헤른은 국가와의 협력에 열린 태도를 보인 인물이었다. 반면 뢰헤는 한 마을의 목사로 활동하였으며 엄격한 교파주의자(루터교)로서 국가의 교회에 대한 개입 및 교회의 국교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국가를 넘어서 움직이는 교회 공동체를 꿈꿨으며 이에 내방선교로서의 디아코니 사업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의 선교사업을 키워나갔다. 19세기 중반에 진행된 개신교의 사회를 향한 봉사활동을 현대 독일 개신교 사회복지 참여의 원형으로 이해하는 기존의 방식을 지양하면서, 그 종교 지도자가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 어떠한 방식의 종교적 논리와 해석으로 사회문제에 반응하며 디아코니의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며 사업을 추진해갔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복지 서비스의 공급의 효율성에 입각하여 종교를 통한 복지사업을 하는 독일의 경우 현재 기독교 측에 대해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점을 다루고자 한다. 특히 종교의 사회복지 사업을 통한 종교적 정체성의 정당화 동인이 현재에도 얼마나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의 종교, 특히 개신교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좀 더 심화된 성찰 및 논의 형성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3. 종교사회복지의 권력화에 대한 고찰 

본고에서 종교사회복지란 종교인[종교기관]이 운영의 주체인 사회복지활동을 망라한 개념이며, 그 토대가 될 종교인· 종교기관의 慈善 관련행위를 검토하고 나서 종교사회복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첫째, 한국의 종교인들은 이타적인가? 국내 사회조사 통계치나 국제 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 등에 의하면, 종교인구 숫자에 비추어 볼 때 사회적 기부나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종교인이 적은 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종교기관에 납부하는 종교적 기부의 규모는 크게 증가하여 왔다. 둘째, 종교기관은 교인들의 헌금과 봉사를 公共財로 생각하며 공정하게 사용하는가? 종교기관은 종교본연의 무조건적 우애를 발휘하는 곳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종교인의 헌금과 봉사가 祈福· 誇示· 報償조건과 같이 利己的 善行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조한다. 대형 종교기관일수록, 축적된 자산으로 세력화된 일부조직이 정치적 관여를 하고, 소속대중의 뜻을 수렴하지 않는 정치적 행위가 敎人의 利他的 善行을 막는다. 끝으로, 종교사회복지는 종교계 구성원의 다양한 善意를 인증하고 수렴하여 사회로 환원하는 場이었으나, 오늘날은 국가의 지원금을 겨냥한 여러 가지 사업장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외부 정치권력과 밀착하고 종교계 자체가 권력화 되는 발판으로 사회복지가 쓰인다. 종교인들의 이타적 선행을 중심에 두지 않는 한, 더 이상 종교사회복지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WGI 
지표 “낯선 타인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 주었는가” 라는 조사의 결과, 한국인은 126개국 중 하위군에 속한다. 그 현실은 종교기관이나 종교사회복지가 “사람”을 주목하기보다 “物資와 제도”에 주목한 책임이 클 것으로 추정하며, 그 지점에서 종교사회복지의 정체성을 반성하고, 나아가 “공존의 우애”를 담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때라고 본다. 


4.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계발과 복지: 한국 개신교 공간을 중심으로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사회는 신자유주의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수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자기계발’과 ‘복지’가 쌍생아로 탄생하였다. 자기계발이 무한경쟁을 속성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모터라면, 복지는 무한경쟁이 낳은 부작용을 완화하는 제도적 장치다. 이처럼 양자는 긴장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외환위기 이후 탄생한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의 모습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후 우리사회에서는 자기계발과 복지가 독특한 관계를 맺으면서 핵심 담론의 역할을 해왔다. 종교공간 역시 신자유주의의 자장에서 자 로울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자기계발과 복지 문제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종교공간에서는 자기계발 붐이 일어나는 동시에 복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종교공간 특히 개신교가 자기계발과 복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응했는가를 검토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개신교의 사회복지 사업이 민간복지 영역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선교적 동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시혜적 차원의 성격이 강함을 밝힌다. 이어서 개신교계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대표적인 자기계발 서적들을 대상으로 텍스트 분석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개신교의 자기계발 담론은 번영신학에 근거한 ‘축복신앙’을 지향하며 거기에는 긍정 이데올로기와 자기규율의 테크놀로지가 주요 무기로 작동하고 있음을 
규명한다. 결론적으로 개신교 공간에서 등장하는 자기계발 및 복지 담론과 실천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하는 사회적 고통의 구조를 은폐하는 ‘자본주의의 신정론’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밝힌다. 


5. 평화적 복지와 종교적 심층
 
1)복지들의 충돌: 복지는 ‘안녕’ 혹은 ‘행복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 이르기 위해 (국가는)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제도화하려 한다. 그런데 제도화가 인간화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제도에 종속되는 순간, 그 틈새에서 비인간성이 꿈틀거리기도 한다. 복지가 정말 복지가 되려면 평등과 균형에 입각한 분배가 필요하지만, 유럽의 선진국들조차 난민을 거부하는 경향에서 알 수 있듯이, 복지조차 자기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자유경쟁에 입각한 성과지향적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행복 추구가 타인의 행복 추구와 부딪히곤 한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 혹은 구조화한 폭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복지는 평화의 문제와 연결된다. 2)평화와 복지: 평화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폭력이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폭력 및 폭력의 가능성이 포진해있다. 인류 역사상 폭력이 없어 본 적이 없다. 그저 폭력을 줄여가야 할 뿐이다. 폭력이 없는 상태는 인류의 이상이고 목적이다. 복지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복지를 온전히 이루어본 적이 없다. 그러한 복지를 이루려 노력할 뿐이다. 복지는 인간의 이상이고 영원한 목표이다. 일체의 폭력을 줄이는 과정이 복지를 이루는 과정이기도 하다. 3)종교에 의한 복지와 국가: 이상적 목적을 제시하고 구체화하려 시도해온 흐름이 종교이다. ‘하느님 나라
’, ‘불국토’, ‘개벽’ 등 이상 세계는 현재적 복지와 평화를 추동하는 미래적 목적이다. 종교가 이러한 이상적 목적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세속화 이후 민족국가가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복지의 국가적 차원은 복지의 종교적 차원과 대립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복지에 기여하려면, 제도의 유지나 확대, 물질적 분배의 차원 보다는 종교의 심층을 복지의 근간에 두어야 한다. 종교에 의한 복지는 삶의 구체적 전환, 화해, 사랑, 기쁨 등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영적 복지(spiritual welfare)이다. 4)한반도 전체를 위한 복지: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이다. 한반도에서 종교적 복지, 영적 복지는 분단에 의한 갈등 해소와 연결된다. 복지가 양극화의 해소와 관련되어 있다면, 분단으로 인한 이념 간 대립의 해소는 한반도 복지를 말하는 현실적 과제이다. 자유(경쟁)와 평등(분배)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와 진보의 세력은 복지에 대한 이해에서도 선별복지와 보편복지로 대립한다. 이런 맥락에서 통일과 평화의 추구는 한반도 전체의 복지를 위한 기본이 된다. 이상의 내용을 적절히 조화시킨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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