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질종교의 관점으로 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성염(holy salt)
물질문화로서의 종교현상은 종교학/종교사에서 종교상징론이나 주술종교담론의 방식으로 줄곧 다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최근 ‘물질적 전회(material turn)’와 관련된 물질종교적 시각이 환기시키는 새로운 지점은 인간중심의 인간-사물(자연)의 이분법적 틀을 전면적으로 반성하면서 상징적 기표나 주술종교적 수단으로서의 물질/사물이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종교현장의 배치들에 참여하는 물질/사물들의 행위성에 초점을 두는 점이다. 특정한 종교신앙, 경전과 교리에 근거하여 해당 종교의 성물이나 봉헌물이 어떻게 이를 표현하고 상징하는지 설명하는 방식에서, 성물 혹은 종교현장을 구성하는 사물들의 물질성, 즉 그 자체의 존재와 성질, 역량과 행위성이 다양한 요소들의 배치로 구조화되는 특정한 종교현상의 어떤 모습들을 만들어내는가를 기술해보는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그러한 연구가 어떻게 가능하며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는지, 종교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어떻게 변화시키거나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예단하기엔 사례연구가 부족하다.
이에 본 발표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의례적으로 일상적으로 물건이나 장소를 깨끗하고 거룩한 것으로 성별하는 데 사용하는 성염(holy salt)의 물질성에서 주목하여, 성염이 가정연합의 종교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특징을 부여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인간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생리적 요소이며 부패를 막고 저장을 용이하게 할 뿐 아니라 맛을 좌우하는 소금은 고대문명에서부터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소금은 동서고금의 종교의례와 민간신앙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등 종교문화적 의미에 참여하는 물질이지만, 소금의 종교적 사용이나 의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일천한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 신종교인 가정연합에서는 창시자를 통해 일찍부터 성별의 물질로 선택된 성스러운 소금, 즉 성염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어왔고 종교의례와 신자들의 삶과 의식에 깊이 자리하고 있어, 종교적 물질로서 소금의 행위성을 기술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가정연합의 교리와 신학이 성염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 지에서 출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신자들의 종교생활에 밀착된 구체적인 물질인 성염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하고자 하는 성염연구가 종교현상의 일부로서 물질의 행위성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새롭게 할 수 있으며, 가정연합의 종교적 특징을 이해하는 데에도 얼마나 유의미할 수 있을까가 이 연구의 두 가지 초점이 될 것이다.
2. 봉헌물에 대한 물질적 접근: ‘엑스-보토(ex-voto)’와 사물의 행위성
종교 신자들이 신앙의 마음을 담아 신적인 존재에 바친 봉헌물은 고대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의 종교 전통에서 다양한 재료 및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오랫동안 종교 연구에서는 종교 의례로서의 봉헌이라는 행위에 주로 주목했고, 봉헌물 자체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지난 세기말부터 ‘물질 문화(material culture)’ 및 ‘물질성(materiality)’에 주목하는 종교 연구들이 부상하면서 비로소 봉헌물은 의례의 컨텍스트를 넘어 그 자체로서 새로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특히 2010년대에 중세 미술사학자 이타이 와인립(Ittai Weinryb)이 기획한 심포지엄과 전시회 및 이와 관련된 출판물들은 ‘봉헌물’이라는 개념 하에 포함될 수 있는 수많은 서로 다른 종교 전통의 예들을 한데 모아, ‘물질종교(material religion)’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들이 어떻게 새롭게 연구될 수 있는지, 또한 이러한 연구가 종교에 관해 어떠한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글은 이러한 흐름을 기반으로 ‘물질종교’ 연구라는 관점에서 봉헌물, 특히 ‘엑스-보토(ex-voto)’라 불리는 봉헌물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고대 로마 시대, 서약에 따라 신들에게 바쳐진 사물들에 쓰인 문구 ‘ex voto suscepto(약속된 서약으로부터)’에서 기인한 ‘엑스-보토’는 이후 가톨릭 교회에서 신자들이 바친 여러 가지 봉헌물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봉헌물 전반을 지칭하는 말로 확장되어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이 글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로마로부터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피렌체, 그리고 20세기 현대 미술까지 이어지는 ‘엑스-보토’의 다양한 모습들을 ‘사물의 행위성’이라는 측면에 주목해서 논의해 볼 것이며, 이를 통해 성스러운 사물의 메커니즘을 최근의 ‘물질에 대한 새로운 논의들’ 속에서 재고해보고자 한다.
3. ‘성스러운 체액’과 아브젝시옹(Abjection) - 나주 마리아의 구원방주를 사례로
성혈(聖血)과 성유(聖乳)로 대표되는 ‘성스러운 체액’은 기독교에서 중요한 성물로 성인의 유해인 성유골이나 인간의 작품인 성화 등과도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인간의 체액이 일반적으로 터부의 대상으로 두려움과 혐오 즉 아브젝시옹(abjection)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성스러운 체액은 다른 성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위치와 성격을 가진다. 본 발표에서는 몸에서 유출된 체액과 같은 거부의 대상이 어떤 (감각적 혹은 심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구원론적 의미를 가진 성스러운 물질로 변환되는가를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성스러운 체액’에 대한 반응은 이를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극명하게 나뉜다는 점에서 물질 자체가 성스러움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이러한 현상은 나주의 마리아의 구원방주 같은 비주류 종교집단을 대상을 할 경우 보다 뚜렷이 관찰된다. 이는 물질 혹은 물질성(materiality)이 단순한 실재가 아니라 다양한 개인적, 문화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성되며 동시에 이러한 ‘관계’를 가능케함을 시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 발표에서는 마리아의 구원방주를 사례로 ‘성스러운 체액’이 여러 주체에 의해 어떻게 다양하게 수용·활용되며, 더 나아가 (은총증언을 통해) 개인의 삶과 어떠한 구체적인 관계를 맺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4. 신령과 신위: 한국종교에서의 신위에 대한 물질적 접근
물질종교(material religion)에 대한 담론이 오늘날 새로운 형태로 부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줄곳 물질적 관심은 현대 종교학이 다른 형태의 종교 연구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었다. 신학, 철학, 그리고 사상사의 영역에서 취하는 믿음과 초월적 실재 중심의 연구 대극에는 인류학과 역사학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종교의 의례적 실천과 물질문화적 측면에 주목한 종교사적 연구가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종교에 대한 물질적 접근들의 지향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두 가지 목표를 가리키고 있다. 첫째, 믿음과 신념 중심의 ‘프로테스탄트적’ 종교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 둘째, 물질/정신, 영/육 등과 같은 전통적인 이원적 범주에 보다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
동아시아의 종교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 특히 기여할 수 있는 것은 후자 쪽이다. 신유학, 대승불교, 도교 등은 물질성에 대한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물질과 정신을 이원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전통, 서로 다른 계층의 여러 문화적 층위가 물질에 대한 서로 다른 범주를 가지고 경합하며 각자의 체계를 재조정해 온 것이 이 지역 종교문화의 특징이다.
이 발표에서 다루는 신위(神位, spirit position)는 ‘의례의 방향을 지정하는 물질적 대상’을 폭넓게 지칭하기 위해서 제안된 개념이다. 여기에는 망자의 사체[墓, 塔], 인간의 몸[尸童, 巫, “向我設位”], 신상[塑像, 彫像, 鑄像], 그림[畫像], 사물[神物], 신위판[木主, 神主, 紙榜] 등이 두루 포함된다. 물질적 접근은 이 주제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신위는 망자 혹은 신령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를테면 그것은 신령이 머무는 곳인가, 아니면 신 자체인가? 이 문제에 대해 유교, 불교, 민속적 인식 사이에 차이가 존재했는가? 또한 신위의 성격과 그 물질적 특성(재료의 질감, 내구성, 가공과 연결 방식)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나의 신령에 대해 둘 이상의 신위가 존재할 경우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이상과 같은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이 발표에서는 시기적으로는 조선시대 한국종교, 방법적으로는 신위의 도상성(iconicity)과 형상성(figurativity)이라는 기호적 특성에 주목하려 한다. 핵심적인 자료는 크게 두 부류이다. 첫째는 소상과 화상의 ‘도상성’ 문제(“닮지 않음”)를 제기한 문헌들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조선 시대의 위패 사용 확산 및 이를 정당화하는 예학적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신명의 드나듦”이라는 종교적 상상력과도 직결되어 있다. 둘째는, ‘도상성’이 극도로 축소되어 ‘형상성’만이 극도로 강조된 특수한 신위들인 위패와 지방(紙榜)의 물질성에 대한 논의들이다. 나무 신주는 일정 부분 신위를 ‘자리’가 아닌 ‘몸’으로 인식하는 상상력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지만, 몇몇 예외적인 자료에서는 마치 소상의 대응물처럼 다루어졌다. 또한 갖가지 예외상황에서 신주를 대체하던 지방은 명확한 예학적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의례와 신위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의 소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