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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전환의 시대, 위로와 애도] ② 오가는 모든 이에게도 축복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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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2-03-29 19:08 조회1,6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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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시대, 위로와 애도] ②


삽화=마옥경 작가
삽화=마옥경 작가


풍요로운 상업도시 바이샬리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사람들 얼굴과 눈이 누렇게 뜨고 핏기를 잃고서 사흘이나 나흘 안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루 동안에 시신을 실은 수레가 백 여 대씩 묘지로 향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참으로 번성하고 풍요로워서 하늘의 신도 부럽지 않았던 바이샬리는 순식간에 텅 빈 황야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전무후무한 공포의 시기에 사람들은 병의 원인은 사람의 정기를 빨아 먹는 나찰귀신이라  생각했고 이 재앙을 물리칠 분으로 너나없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웃 강대국인 마가다국에서 아자타삿투왕에게 안거 석 달 동안의 공양을 약속받고 머물던 중이었습니다. 안거 중에는 함부로 거처를 옮기지 않는 것이 승가의 법이고, 게다가 왕의 공양을 받고 있는 부처님을 이웃 나라로 모셔간다는 것은 자칫 국가간 분쟁의 소지가 있어서 바이샬리 사람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장자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간절하게 청하자 또 다른 분쟁을 염려한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왕을 설득하라며 그 방법을 일러줬습니다.  

왕에게 나아가서 ‘당신은 죄 없는 부왕을 죽여 지옥에 떨어질 목숨이었지만 과거의 허물을 뉘우치고 진리 안에서 믿음을 이루었으니 장차 천상에 태어날 것이며, 끝내는 깨달음을 이루실 것’이라고 축원을 하라는 것이었지요. 왕이 이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소원을 말하라 할 때 바이샬리 역병을 퇴치하기 위해 부처님을 잠시 모셔가고 싶다고 청하라는 것입니다.  

왕은 진실한 축복의 말에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을 품어서 이웃 나라 역병을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부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과연 왕은 기꺼이 장자의 청을 들어주었고, 부처님은 수많은 수행승들을 거느리고 역병이 창궐한 바이샬리로 향했고, 이내 구호활동을 펼쳤습니다. 부처님의 구호활동은 다름 아닌, 성문에 도착하여서 저 유명한 ‘보배경’을 소리 내어 읊는 것이었지요. 

“여래는 세상에서 으뜸이요/ 진리는 깨달음의 세계로 이르게 하며/ 바른 수행자는 성현들 중에 으뜸이니/이 진실한 말을 품으면/이 성에 재앙 없으리/ 온 생명 평안하라/ 오가는 모든 이에게도 축복 있으라/ 밤이나 낮이나 안락하여/ 힘겨워하지 말라/이 진실한 말을 품으면/ 이 성에 재앙 없으리.” 

삼보를 향한 믿음을 굳게 품고 모든 생명을 축복하는 마음이 부처님 음성에 실려 바이샬리 성 안으로 퍼지자 사람들을 괴롭히던 전염병(나찰귀신)은 멀리 달아나버렸고, 병을 앓던 사람들은 씻은 듯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증일아함경> 

사람은 병을 앓게 마련이고 죽게 마련이며, 세상에는 전쟁도 전염병도 돌게 마련입니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구하는 데에도 가진 자의 전횡과 잇속을 챙기는 거래라는 또 하나의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 시절, 부처님은 백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강대국이 거머쥐고 절대로 나눠주지 않으려는 백신이었지요. 그 또한 어쩌겠습니까. 자국민부터 살리고 봐야 하는 것이 세속의 인지상정이니까요. 부처님 대처법이 흥미롭습니다. 온갖 이권을 움켜쥐고 으름장을 놓는 강대국 왕에게 진심을 담아 축복을 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신을 움켜쥔 손을 자발적으로 기쁘게 풀도록 안내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한 성에 가서도 온 생명의 안위를 비는 간절하고 진실한 시를 읊었습니다. 오직 믿을 것은 상대를 향한 한없는 배려와 친절과 우정과 연민뿐이라는 걸 보여준 것이지요.  

이 코로나가 잦아들면 앞으로 더 센 것이 또 찾아올 것입니다. 사람들의 병고와 신음과 고독과 부의 재편에 따른 한탄이 또 이어지겠지요. 그게 인간이라는 생명체, 지구라는 유기체의 운명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의술은 또 발전하겠지만 병고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괴로움은 예약되어 있습니다. 2600여 년 전, 바이샬리의 역병을 갈등 없이 조화롭게 잠재운 부처님의 지혜를 백신 삼아, 치료제 삼아 늘 챙겨야겠습니다. 


필자: 이미령씨.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석사 졸업, 불교교양대학강사, 칼럼리스트, 경전이야기꾼.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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