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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전환의 시대, 위로와 애도] ③ 상실에 직면한 당신을 위한 불교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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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2-03-29 19:12 조회1,6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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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화첩』
『기산풍속화첩』 


인간이라면 삶의 여로에서 누구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겪게 마련이다. 그가 친족이든, 기르던 반려동물이든 간에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게 되는 일은 견디기 힘든 상실감과 함께 우울감, 무력감을 동반하는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또한 슬픔의 질량 면에서도 죽음은 인간이 일생동안 치르게 되는 인생의례 중에서 가장 무거운 일일 것이다. 

죽음도 여러 형태의 것이 있는데, 자연재난이나, 불의의 사고, 병사 혹은 자살과 같은 경우도 있다. 어떤 죽음이든 간에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크고 작은 상흔을 남기며, 때로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대를 넘기면서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인간사회에서 종교가 해야 하는 역할 중의 하나가 죽음을 처리하는 의식(Ritual)을 제공하는 일일 것이다. 불교의 사례를 들자면, 2011년 동일본을 휩쓴 쓰나미(3.11 대진재)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일본의 불교교단을 비롯한 종교교단들이 피해현장으로 내려가 피해주민들의 마음치유(mental care)활동을 전개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에 이전 왕조를 기억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거나, 전란 등의 재난으로 지치고 불안한 민심을 위무하기 위해 국행의례로 행해졌던 의식이 바로 불교의 수륙재(水陸齋)다. 일종의 ‘집단치유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수륙재는 불의의 죽음들을 기억하고, 살아남은 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대형 천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억불(抑佛)의 정치적 기조를 넘어서서 국행 수륙재를 설행했던 배경에는 재난을 겪고 난 백성들의 심리적 치유와 재활의지를 도움으로써 사회를 안정시키는 공공적 기능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죽음의 원인이 사회적인 경우에는 사망자 외에 사망자의 가족과 사고 생존자 역시도 그에 버금가는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 생존자 증후군(survivor syndrom)이라고도 부르는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은 전쟁, 자연재해, 사고 등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자책감을 의미하며, 이를 ‘외상(trauma)’의 범주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종교에서 행하는 죽음의례에서는 사망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과 동시에 생존자의 정신적인 외상 치유에도 노력을 기울인다.

사고 생존자는 동일한 트라우마를 겪지 않은 이들이 사는 사회로부터 ‘단절’을 느끼기 때문에그들을 다시 이 세상에 ‘재통합’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불교의 수륙재나 영산재 같은 대형 천도의식들을 그들 사고 생존자를 다시 사회 안으로 수용하는 재통합 작업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죽음의 측면에서 보면, 사십구재를 비롯한 천도의례는 기본적으로 망자를 위한 의식이라 하더라도, 다른 한 편에서는 산 자를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여기서 산 자를 위한 의식이라는 말은 산 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의식이라는 의미와 함께 산 자가 그 의식으로 인한 공덕, 즉 치유효과를 얻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7일마다 한 번씩 사십구재를 치러가면서 한 재, 한 재 지낼 때마다 남은 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필자의 언니도 작년에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내게 됐는데, 사찰에서 사십구재를 치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망자를 위해 기도하고, 재의식을 주재하는 스님으로부터 생과 사를 가르는 인연이 결코 누구의 탓도 아님을 확인하는 법문을 들으면서 조금씩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자책에 덜 시달리더라고 했다.

언니의 사례는 긍정적으로 의례가 기능한 경우이지만, 가족사에서 제대로 의례의 단계를 거쳐 기억 속에 재편되지 않은 상실은 다시금 돌아와 다음 세대를 괴롭히는 일이 매우 흔하다고 한다. 부모가 겪은 정신적 외상이 자녀 세대에 그대로 답습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세대 간에 걸쳐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다시 사회적 시각으로 확대하면,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상실을 적절한 시간과 장소, 사례에 따라 의례를 통해 풀어주지 않으면 뭉친 감정의 덩어리들이 언제,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 그 사회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와 통한다.

용산 참사, 세월호 사건, 계약직 용역의 산업재해··· 그 수많은 상실을 지면에 다 적을 수 있을까. 이러한 사회적 폭력과 불합리에 의한 희생자 집단의 상실을 현재화하여 광장에서 모두에게 보이고, 기억시키고, 위로받는 집단치유의식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그것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트라우마 치유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인 ‘공감’, ‘기억’, ‘집단의례’를 확보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 간에 합의된 종교의식인 것이다. 그러한 종교의식에서는 죽은 자들의 얘기를 들려주고, 그 죽음의 이유를 기억하고, 다시 그러한 죽음이 생기지 않게 노력하겠다는 산 자들의 약속이 만나는 절차가 반드시 있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 의식의 현장이 너와 나, 망자와 산 자, 개인과 사회를 차별 없이 모두 구원하는 불이(不二)의 회상(會上)이 되지 않을까. 


필자 : 김성순 서울대 종교학과 박사, 현 전남대학교 연구교수, 불교아카데미 이사.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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