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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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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11-09 14:15 조회4,6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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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종교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박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가 인터넷 검색어 1, 2위를 차지하고, 그 다음이 최태민과 영생교다(2016년 10월 26일 기준). 이는 종교가 큰 영향을 끼치는 한국이 아니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 검색어의 순위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전혀 소통을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유체이탈적 화법을 쓴 이유가 “바로 종교에 너무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해프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종교로서나마 상식 초월의 현재 사태를 이해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 아닌가 한다. 박 대통령이 국가 통치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비선라인에 의지한 것도 커다란 문제이지만 국민들은 이른바 ‘사이비 종교인’에게 국가 대사를 맡기고 결정해왔다는 점에 더욱 화가 난 것이다. 

1974년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만남 이후, 오늘날까지 박 대통령은 최태민의 종교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었던 것 같다. 최태민은 고 육영수여사의 현몽을 미끼로 해서 박 대통령과 만나고, 1975년 대한구국선교단 창설과 기독교 반공구국대회를 주도하며, 자신의 종교적 권위를 딸 최순실이 이어받게 만든다.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우주의 기운,” “혼의 비정상” 등과 같은 종교적 용어는 최태민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2007년 7월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본국으로 송고한 비밀문서에 의하면, “죽은 최 목사가 박근혜의 인성 형성기에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그런 결과로 최태민의 자녀가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라고 되어있다. 박 대통령에게 끼친 최태민의 종교적 영향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인터넷 논객들은 최태민 부녀의 종교적 행각을 이해하기 위해 그 연원을 일제 강점기의 기독교 신비주의자 계보에서 찾기도 하고, 해방이후 박태선의 전도관에서 파생된 조희성의 영생교나 이만희의 신천지 같은 종교단체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연관 관계는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한국의 많은 신종교들은 신명과 같은 영의 세계를 강조하고, 유교, 불교, 선교, 기독교를  종합하려고 하며, 내세가 아닌 현세천국을 대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최태민의 영세교 혹은 영생교는 조희성의 영생교와는 다르다. 둘이 이름은 같더라도 서로 활동 연대도 맞지 않고 종교성격에서도 차이가 난다. 조희성의 영생교가 비록 《격암유록》과 같은 참위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더라도 메시아를 중시하는 기독교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최태민의 영생교는 조물주의 칙사와 권능, 그리고 조화를 강조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최태민이 종교적 카리스마는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종교적 주장을 체계화시킨 것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종교와 세속이 구분되지 않은 삶을 산 것이 아닌가 한다. 요컨대 그는 공-사 구분에 대한 인식 없이 세속적 이해(利害)를 위해 종교를 열심히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그런 종교적 마법에 잡혀 성속을 구별하지 않는 그들의 아바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번 세월호 참사 때, 수사 당국과 언론이 정부의 무능과 사회 시스템의 잘못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유병언과 구원파만 따라 다녔던 우(愚)는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 범하지 않아야. 그리고 한 때 한국 기독교계 인사 중 적지 않은 자가 최태민 목사를 앞세워 이익을 취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기독교계가 회개는 고사하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무조건 무속이나 신종교에 책임을 돌리는 식의 주장을 해서는 곤란하다. 무속이나 신종교도 한국인의 신앙생활에 필요에 의해 등장한 종교들이다. 엄연히 우리 사회 종교문화의 일부분이다. 

그런 종교들이 있어야만 우리 사회의 종교문화가 살아 있는 문화로서 건강하게 순환할 수 있다. 기성종교의 선교적 패권주의나 기독교의 정통과 이단 논리로 무조건 배척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모든 종교는 고난에 찬 인간에게 희망을 주고 인간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문화의 기제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전통 있는 종교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훼손시키고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를 막는다면 아무리 전통 깊은 세련된 종교라 하더라도 그것 역시 종교적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종교를 대할 때 자신의 믿음과 이성적 사유 간의 균형점을 잘 찾지 못하면 신앙이 없는 것만도 못한 경우가 많다. 

종교는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고, 인간의 삶을 가로막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가는 지를 결정하는 것은 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를 행하는 인간이다. 어머니가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정성을 다해 자식의 안녕을 빈다면 누가 그것을 미신행위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반면 성직자가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성추행을 일삼는다면 누가 그것을 올바른 종교행위라고 하겠는가? 종교 자체를 가지고 좋은 종교와 나쁜 사이비종교를 따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교는 칼과 같아서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사기꾼이 사용하면 사기꾼의 종교가 되고 사랑의 천사가 사용하면 사랑의 종교가 된다.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최태민 수사 보고서>가 말한 대로 최태민이 신분이 변할 때마다 매번 이름을 바꾸고 종교를 이용해 성추행을 저지르고 거대한 재산을 축적하였다면, 그리고 딸 최순실이 종교를 이용해 국정을 농단했다면 최태민 부녀가 어떤 종교를 이용했든지 간에, 즉 그 종교의 내용과 성격에 관계없이 사이비종교가 된다. 

말하자면 박 대통령과 최태민 부녀의 종교에 대한 평가는 그들의 종교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종교를 통해 살아온 초법적인 범법 행위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윤승룡(출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뉴스레터 4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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