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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여성시민, 변화하는 섹슈얼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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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4-02-27 23:21 조회4,8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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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여성시민, 변화하는 섹슈얼리티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 참여자 90% 이상 여성

10개월간 5만 건 신고… 여성 공동체 파워 ‘눈길’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열면, 성적 거래의 세계로 초대하는 광고가 북적인다. 전철역, 주차장 주변에는 성적 서비스를 홍보하는 전단지가 융단처럼 깔려 있다. 서울시가 시민감시단 1000명을 모집하는 공고를 낸 이유다. 공권력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음란물, 성매매 알선이나 광고 등을 모니터링해서 신고하는 감시활동이 필요했다.
 
 
모집이 되지 않을 것에 대비해 신청서를 들고 발품을 팔 준비를 했으나, 우려와는 달리 일주일 만에 조기 마감됐다. 각종 게시판에는 감시단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댓글이 쏟아졌고, 신청 마감 이후에도 가입을 요청하는 전화가 여진처럼 이어졌다. 모집에 국한된 호응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자체 모임을 갖고 새로운 형식의 게릴라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며, 나아가 사이트 운영자를 직접 고발하는 등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들 열심히 하지?” 직장인은 휴가를 내고 대학생들은 공휴일까지 헌납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질문이 나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참여자의 90% 이상이 여성이고 특히 20대, 전체적으로는 여대생들이 가장 많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성산업과 관련된 문제는 행위 당사자의 성별뿐 아니라,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태도에 있어서도 선명한 성별의 차이를 보인다. 여성들은 인터넷, 전단지 등에서 알몸 사진이나 여성 비하적인 선정적 문구가 담긴 광고들을 보며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개적으로 성희롱을 당하는 느낌” “너도 그런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한 모멸감”을 받기도 한다.
 
이를 척결하는 사업은 그만큼 여성들의 공감과 호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불쾌하고 불편해도, 이제까지 여성들은 성산업의 적나라한 현실과 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성적인 것 자체가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그 주변을 서성이다간 자칫 자신도 오염된 존재로 오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감시단 여성들은 ‘빨간 그네’ ‘전립선 마사지’ 등 인터넷상의 기상천외한, 그동안 여성의 접근이 금지돼 온 성산업 시장을 종횡무진한다. 성산업 사이트를 구석구석 검색하고 심지어는 회원으로 가입해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신고하는 등 번거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적나라한 성행위, 여성이 등급 매겨지고 흥정되는 현장을 목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10개월 동안 신고 건수가 5만 건이 넘었고 실제 삭제 건수도 3만 건을 웃돌았다. 시민 공동체의 힘과 활기를 실감한다.
 
이들의 활약은 얼마 전 여학교 앞 ‘바바리맨’을 잡은 태권 소녀들과 겹쳐진다. 그 맨(?)은 시대를 넘어 전국구 어디에서나 출몰하기에, 나 역시 초·중·고 학창 시절 그 맨의 ‘공연음란행위’를 수없이 접해왔다. 그러나 ‘캭~’ 하고 도망치거나 기껏해야 냉소적인 코웃음을 날리는 정도였지, 단 한 번도 잡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대 10대 20대들은 이제, 캭~ 놀라주는 전형적인 여성 역할을 집어치우고 모욕감을 준 주범을 쫓아가 그를 응징하려 한다.
 
내가 이들의 활약을 특이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연령대도 아니고, 성적 수치심에 대한 민감성이 가장 높은 젊은 여성들이, 성적인 현장을 ‘정면으로’ 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성적인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자신의 수치심으로 동일시하던 여성 심리(성=여성 수치=자기 수치)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의 심리적 작용이 존재한다.
 
 성 자체가 수치심은 아니며 나아가 자기 자신이 수치스러워지는 것도 아니다. 성, 수치심, 여성 자아 사이에 거리감이 생긴 것이다. 성적 모욕과 추행, 여성 알몸 등의 성적 표현물, 성적 거래 등이 단지 성적이기 때문에 (비도덕적이어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적 상황에서 여성에게 모욕과 수치심을 느끼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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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성매매 알선사이트, 신·변종 성매매 업소 홍보 사이트, 해외여행 성매매 홍보 사이트.   ©여성신문
 
 
나는 이러한 간극이 성에 기반한 남성 지배를 변화시킬 상당한 잠재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수치심 유발은 지배와 배제의 가장 손쉬운 전략이고, 회피와 냉소적 반응이야말로 가장 흔한 복종의 표현이다. 수치심으로 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공간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모욕감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그’ 행위를 똑바로 주시하고 이를 제거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공간을 획득하기 위해 선취해야 할 기본적인 태도다. 이러한 심리적 탄탄함과 더불어, 태권도 4단인 소녀의 몸과 인터넷에 능숙한 기술 역시 변화하는 세대, 여성 파워의 근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얼마 전 성매매 알선 사이트 신고를 열심히 해 온 A씨 사례가 방송됐는데, 방송 이후 A씨는 크게 상심하고 위축됐다. 지지와 비난의 글뿐 아니라, ‘감시한다면서 너도 즐기는 거 아니냐?’ ‘너도 그런 여자 아니냐?’는 식의 댓글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에게 ‘여성’이란, ‘남성의 성적 대상물’ 아니면 기껏해야 ‘내숭 떠는 도덕주의자’로 표기된다. 용감한 여성들의 등장과 활약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을, 그것도 가장 적나라한 상업적 성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과 줄타기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줄여나가기 위해, 성문화의 혁신을 위해 이제는 시민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할 때이다.
 
필자 원미혜는
여성학자. 섹슈얼리티, 성매매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진행해왔다. 한국여성연구원, 막달레나공동체 등에서 일했다. 주요 저서로는 ‘섹슈얼리티 강의’(공저) ‘용감한 여성들, 늑대를 타고 달리는’ ‘경계의 차이, 사이, 틈새’ 등 10여 권이 있다.
 
 
(출처: 여성신문 201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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