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두려워하나? 두려워하면 스스로 갇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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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3-07-15 17:07 조회4,598회 댓글0건본문
무엇을 두려워하나? 두려워하면 스스로 갇힐 뿐
금번 194회 종회에서는 '종헌종법개정안'을 폭넓게 다루는 가운데 호계위원의 자격을 ‘승려’로 개정해 비구니 스님들의 진출을 가능하도록 한 개정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일부 비구스님들이 난색을 표명하고, 모스님은 실제 현장에서 비구니스님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등 비하발언을 함은 물론, 비구니스님이 호계위원의 소임을 맡는 것은 율장에도 어긋난다고 하였다. 이는 비구스님들의 보편적인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비구니와 관련된 재판업무를 하는 데 당사자들인 비구니가 빠져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가 봐도 이해가 안가는 어이없는 일이다. 결국 이 개정안, 그것도 ‘초심호계위원’에 관한 개정안은 찬반 논란 끝에 거수투표로 부결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부동의와 항의표시로 비구니 종회의원 스님들이 전원 퇴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여기서 소납은 비구니의 일원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개탄을 금치 못한다. 누구와 약속한 것도 아닌데 왜 비구니스님들은 하나 둘 자리를 박차고 전원이 다 나간 것일까? 올라온 안건은 한번 부결되면 다시 상정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그동안 ‘자정과 쇄신’이라는 깃발아래 '종헌종법개정안'이라는 숙제를 가지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논의하고 애태우던 일이었다. 그런데 비구스님들은 '다수'로, 결국은 힘의 논리로 그렇게 밀어붙인 것이다.
비구스님들은 종단의 양성 평등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건드려지면, 항상 율장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을 항상 들고 나온다. 옹색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다시 묻고 싶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율의 참된 뜻이 어디에 있는가? 율장은 오직 '승단의 화합’을 위해서 제정한 것이다. 율장의 가장의 큰 힘은 소소한 규정이 아니라 승단의 화합됨, 화합승가가 바로 그것이 율장의 정신이다. 부처님이 율장을 제정할 때, 당신의 어떤 권위도 세우지 않으셨다.
위대한 스승이 그러하셨고, 그 분의 가르침이 이러할진대 그 분을 믿고 따르며 그 분과 같이 되기를 염원하는 우리들은 이렇게도 못난 것일까? 표결로 가면 당연히 부결될 것은 강 건너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적 질서에 충실한 양 표결을 하고, 그리고 멋있게(?) 부결시켰다. 그런데 혹시 아시는지, 민주주의의 기본은 평등임을...!!
비구스님들이시여!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두려워하면 스스로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지는 않으신가?
율장에는 근본 계율도 아닌 소소계(小小戒)의 경우, 시대의 변화와 환경에 맞게 재해석할 수 있도록 열려져 있다. 그것이 정법(淨法)제도이다. 불법이 우수한 것도 이러한 정법의 율장정신이 역사발전에 기여하면서 면면히 계승되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열반하신 자운대율사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이부승(二部僧) 수계제도를 확립하고 비구니계단에 7증사의 비구니율사를 세우셨다. 그리고 최후의 인증 절차만을 비구계단에 속하게 하였으니 율장정신을 계승한 큰 결단이었다. 비구니는 비구니계를 받고 탄생한다. 그리고 비구니승단에도 율원이 적극 설치되고 운영되어져 오고 있다.
비구니스님들도 율장정신이 무엇인가 쯤은 알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불법도, 계율도 모두에게 열려져 있는 것이다. 어찌 비구스님들의 독점물이겠는가? 종단의 운영이 어찌 비구스님들의 힘으로 밀어붙이기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왜 율사스님들은 이러한 힘의 논리위에 앉아서 관망만 하고 계시는가? 정말로 종단의 큰 어른의 존재가 간절한 때이다.
우리가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갈마정신'의 회복이다. 즉 토론문화의 성숙이다. 화합정신의 완성이다. 승단 운영에 관한 모든 사안은 갈마를 통해서 결정되어져야 한다. 이부승가 대표들이 모여 구성된 자리가 종회이다. 그런 종회에서는 모든 사안의 결정은 전원 출석에 만장일치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전원 출석은 아니더라도 만장일치로 내린 판단만이 그 유효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한 화합의 정신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과반수 찬성 등등의 이야기는 진정 화합을 위한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다.
비구스님들은 종단 정화에 누구보다도 위법구망(爲法救亡)의 정신으로 앞장 서왔던 비구니스님들의 생생한 기록을 어찌 망각하는가? 종단을 위해서라면 그 선봉장에 나서길 두려워 하지 않았다.
이번 일에 많은 비구니 스님들은 '역시나' 하는 깊은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자성과 쇄신’이 그야말로 입으로 만 하는, 그저 모양만 내는 구호에 그치지 않기를 강력히 바라고 있다.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꽃은 지지만 그 밑에 수많은 새로운 씨앗을 준비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씨앗은 더 큰 힘으로 세상에 널리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부디 선도적인 자세로 더 큰 마음으로 종단의 앞날을 위한 결단이 필요할 때이다.
2013년 06월 28일 (금) 효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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