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통령’ 논란 유감, “이젠 ‘성평등 대통령’을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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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2-12-07 13:18 조회4,574회 댓글0건본문
‘여성 대통령’ 논란 유감, “이젠 ‘성평등 대통령’을 요구하자”
‘생물학적 여성’ 벗어나 양성평등 국가 패러다임부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0월 27일 ‘대한민국 여성혁명 시대’를 선포하고 ‘여성 대통령’ 당위성을 강조하며 연일 급진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정국이 여성 대통령 논란으로 뜨겁다.
이번 대선엔 박 후보를 비롯해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 노동자 대통령 후보 선출위의 김소연 전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까지 총 4명의 여성 대선 후보가 나와 헌정사상 최다 여성 후보군을 이루었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여성 후보가 첫 등장한 이번 대선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논의가 선거 막바지에 급조돼 뜨는 것도 문제지만, 이 논쟁이 ‘생물학적 여성’이냐 ‘여성주의적 여성’이냐 식의 흑백논리로 특정 후보에게 집중돼 대중에겐 생경하고 편협한 개념에서 전개되는 것은 더 문제다.
급기야는 한 심리학자의 특정 후보를 겨냥한 “생식기만 여성”이란 폄하 발언까지 나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성’ 대통령이 기존 주류 남성 대통령과 어떻게 차별화된 비전을 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여야의 갑론을박 논쟁 속에 파묻힌 지 오래다.
여성 대통령론의 진원지 박근혜 후보의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복합적이다. 생물학적 여성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향수가 강한 세대에겐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이미지와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자애로운 이미지가 겹쳐 구세주와 성녀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를 두고 10월 열린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젠더센터 창립기념 토론회에서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이진옥 상임연구원은 “여성 대통령 후보이면서도 동시에 신비주의와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을 여성으로 매몰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보편적 대표성을 획득하는 이중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박 후보의 핵심 지지층인 5060 여성들은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첫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 환호한다.
즉 여성이 최고 통치권자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양성평등 시대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 연구원이 지적한 대로 “‘정치’ 영역은 여전히 성차가 그 입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고 때문에 선거 과정에서 성이 정치 전략의 중요한 매개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이어진다.
때문에 그는 같은 맥락에서 박 후보가 “여성 후보로서 여성 대표성의 구현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린다.
현재 진보진영의 여성 대통령론에 대한 반격은 심상정 후보의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은 전제적 여왕 대통령론” 주장이나, 민주통합당 김상희·남윤인순 의원과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의 공동 주최 좌담회에서 논의된 “여성 대통령과 여성주의 대통령은 다르다”는 입장으로 대강 정리된다.
이에 대해 마중물여성연대, 미래여성네트워크 등 9개 여성단체가 모여 만든 ‘여성 대통령 탄생을 염원하는 여성단체들의 모임’은 “박 후보는 15년간 정치를 하면서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 노인,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며 양성평등 국가 실현의 최적임자로 박 후보를 꼽는다.
그러나 그 이면에 가장 부각하고 있는 점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편견과 어려움을 딛고 최고의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상당히 추상적인 논리다.
박 후보의 호주제 폐지, 전자발찌법 등의 과거의 성과나 일·가정 양립에 초점을 맞춘 대선공약 ‘여성행복 7대 약속’에 여성 대통령 시대가 되면 ‘술 정치’ ‘성희롱 정치’는 다 사라질 것이란 전망을 들어 여성 대통령이 새 세상을 열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매우 피상적으로 읽힌다.
반면 박 후보가 여성이지만 결혼, 출산, 육아부터 각종 성차별에 이르기까지 보통 한국 여성들의 삶과는 유리된 ‘공주’라는 점을 들어 “여성에 대해 무엇을 알겠느냐”는 논리 역시 편협하고 성차별적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연례 성 격차 보고서에서 올해 135개 조사 대상국 중 한국의 성평등 순위는 108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오히려 지난해보다도 한 계단 하락했다. 이것이 우리의 ‘여성’ 현실이다.
이 시대 대통령의 자격에 ‘여성’보다 더 다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이 질곡을 헤쳐나갈 성평등 비전이며, 양성평등 국가 패러다임이다.
생물학적 여성에 기대어 경쟁적으로 펼쳐놓는 지엽적 공약과 이미지 속에서 펼쳐지는 여성 대통령 논란은 여성 유권자에게 별 실익이 없다.
2012-11-09,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pleu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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