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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천주교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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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2-09-20 20:45 조회5,4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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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천주교와 만나다”, 조선 여인들 열광케 한 근원적 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여성, 천주교와 만나다”, 조선 여인들 열광케 한 근원적 힘
 
조선의 여인들은 왜 천주교에 열광했을까?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란 말이 있듯이 옛 여인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자식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나 집안의 안살림을 하는 일군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힘든 사회 구조적 여건 속에서 조선 여인들이 만난 서학, 천주교는 말그대로 ‘복음’이었다.
 
지난 4월30일 오전 10시부터 대구대교구 관덕정순교기념관에서 열린 ‘여성, 천주교와 만나다’ 영성 강좌에서 강사 김정숙 교수(소화 데레사/한국사)는 그리스도교의 수평적 사상이 조선 여인을 열광케 했으며,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진단했다.
 
7주간 진행되는 관덕정 영성강좌의 제 1강은 ‘말하는 여성, 일하고 싶은 여성’을 주제로 한국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를 짚어보면서 100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와 천주교 여성의 역할에 대해 다루었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기까지 여성들의 역할은 탁월했습니다. 그들의 자리를 교회사 속에서 돌아보며 오늘 우리 시대의 여성이 세상 안에서 걸어갈 신앙의 삶을 조명합니다.”
 
김정숙 교수는 전통시대의 여성보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집안 일에서 해방되었으니 그 시간을 사회생활을 하는데 써서 바쁘다고 말한 김교수는 돈으로 시간을 벌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자기 몫을 찾기 바쁘다고 한다.
 
과거 백년을 돌아보면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의 생활 양식이 많이 존재했는데오늘날처럼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라고 말한 김교수는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을 부수었다”면서 “일제 강점기에 자존감을 잃어버린 우리는 전쟁을 겪으면서 서양처럼 사는 것이 꿈이 됐고, 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서양문명을 쫒아 왔다”고 밝혔다.
 
 “변화가 빠른 사회는 문제가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세대간, 남녀간 차이가 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미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토론의 문화보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우리 사회의 관행에 대해서 김교수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은 여전히 과거 조선시대를 관통했던 유교 사상이지만 근대에 들어와 학교 교육이 보편화되고 서양의 가치관이 자리 잡으면서 수평적 사고의 기독교 사상이 근간을 지배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통 문화 속에는 군신, 장유, 형제, 부부의 역할이 분명했고, 양반들은 아래 사람들을 돌보고 가르칠 의무가 있었습니다. 옛날 양반 집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대문을 열어뒀습니다. 동네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곳에 와서 물었죠. 옛날에는 형을 가르치면 배움에 앞선 형이 아우를 보살폈습니다.
 
지금은 모두에게 기회를 주면서 서로 평등합니다. 교육은 수평적으로 이뤄지지만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수직적 사고방식은 여전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우리 사회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가르치지 않았고, 책임이나 배려를 가르치지 않고, 평등과 수평적 사고를 가르쳐 왔다. 이러한 현대의 교육은 모두에게 기회를 보장하지만 어떤 사람도 보살피려 하지 않는 폐단을 낳았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세대 간의 갈등의 불씨로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사회의 갈등과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김정숙 교수는 공감의 도덕적 잣대를 천주교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조선시대 천주교 여성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고 제안한다. 조선시대 한국에 들어온 천주교는 전통사회의 가치관 속에서도 잘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혼자만 정의로워서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으며 사회가 정의로움을 공감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조선의 끄트머리 시대에 조선에 들어온 천주학은 조선과 근세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며 현대 사회에 새로운 모럴을 제시할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교수는 천주교에는 하느님이 거저 주는 선물인 ‘은총’이 있으며 이것은 곧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우리 사회를 관계의 사회라고 정의한다. 선물을 규격화해서 상품화 시키는 나라, 선물 세트들이 명절이나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각종 기념일에 천편일률적으로 선보인다.
 
인사할 사람도 많고, 무언가를 받았으면 꼭 되갚아야 하는 것도 한국인이다. 이런 국민들의 정서 속에서 햐느님이 주는 ‘은총’은 상당히 낯선 선물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온 초대 교회 때는 ‘은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김교수는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는 ‘이 세상에서 이 백성만큼 인류애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나온다.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은총의 범위를 넓히면 지금 우리 사회의 불안정하고 소통 부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천주교는 여성들에게 무엇이었는가?
 
그녀는 ‘조선여성, 왜 천주교에 열광했는가’에 대해 분석하면서 역사 속의 평등을 알려면 그 시대로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양대 전쟁, 즉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난 기간은 거의 50년의 세월이었다. 그 전쟁 기간 중 사람들은 많이 불안했고 사회가 크게 변했다. 여성들은 책을 많이 읽었으며 여성 저술가도 많이 배출됐다. 규합총서나 사주당 이씨 태교신기, 그리고 요리책이나 화장법 등 여성에 관한, 여성이 쓰는 책들이 나왔다.
 
여인들이 점포를 가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전쟁 기간동안 여성은 성장했고 그 뒤 들어온 천주교의 평등 사상은 전통 가치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여성의 역할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물질적 성장에 이어 천주교는 정신적 만족감도 주었을 것이다 천주교 전례에서는 남녀가 응송을 한다.
 
혼인의 뜻을 묻고 남녀에게 공평하게 혼인서약을 묻는다. 여성들이 천주교에 매료될 수 있었던 더 큰 요소는 ‘축첩’이었다. 첩을 들이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에 첩을 축출한다는 것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과부의 재가를 금했던 시대, 여인들은 남편을 여의면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남의 집 첩으로 들어가서라도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천주교는 이런 것들을, 현대에선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여성의 권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여성의 인간성에 손을 들어주었다. 특히 천주교회에서는 아들 딸을 구별할 수 없으며 남아나 여아 모두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인식했다. 당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파격적인 생각이었다.
 
또 천주교는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도 뚜렷한 가르침을 제시했다. 교리서에는 수태 순간부터 생명이라고 가르쳤고, 아이가 태어나면 3일 이내 영세를 받게 했고 8일을 넘기지 못하게 했다. 교회는 해산 중에 죽을 위험이 있는 아이는 우선 밖으로 나온 부분을 잡고 대세를 하며,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대세를 하라고 가르쳤다.
 
신자들은 이렇게 아이들의 대세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영아나 어린이들의 인권에 대한 관념이 향상되었을 것이다. 교회에서 여성이 남성 신도와 일을 나누어 맡는 경험은 여성 사회에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여성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던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책임질만큼 성장해 나갔으며 여성지도자도 배출했다. 여성 신자들의 성장은 교회 뿐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신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19세기 말엽 이후 천주교가 수용되고 여성의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물론 당시의 신자들이 교리서의 가르침을 읽으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일시에, 완벽하게 자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근대정신은 천주교를 수용하면서부터 깨어났다. 이것은 서구물질 문명이 들어오기 이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김교수는 “오늘날에는 당시 여성 사회에 충격적이었던 천주교의 가르침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다시 설명하거나 보는 것조차 싱겁게 느껴질 수 있다”고 전제한 후 “하지만 이것을 처음 받아들였던 사람들의 내면 갈등과 용기, 그리고 그들이 받은 박해 덕분에 그런 것을 우리가 거저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들보다 천주교를 접하기 더 어려웠던 여성들이 천주교를 믿고 전교를 하고 예수의 말씀을 실천했다.
 
오늘날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하찮게 느껴지는 일들이지만 그 시대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기에 조선의 생활과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선 역사의 끝 무렵에서 전해진 천주교가 조선 시대 여성의 변화의 중심에 섰다면, 오늘날 우리도 우리 사회의 갈등과 소통 부재의 현실을 깨트리기 위해 나서야 합니다. 남녀 평등과 인간 평등, 그리고 하느님이 거져 주신 선물인 ‘은총’으로 사랑을 나누며 이 세상의 변혁을 꿈꾸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모든 고민을 해결할 방안을 조선시대의 천주교 여성들이 선택하고 행한 것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교수는 흔히 개화기 때 여성의 의식이 변했다고 인식돼 있지만 실제로는 천주교가 전래된 조선시대에 이미 여성들의 의식은 변했고, 그것은 시간 안에서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 낯선 사상에 열광했던 조선의 여성들, 인간애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 삶을 살고자 했던 그 시대 여성에게서 오늘의 갈등 해법을 찾아가기 위한 공부는 다음 강의에서도 이어진다.
 
대구 관덕정순교기념관 영성 교육은 5월 6일 2강으로 ‘편지로 세운 교회’가 이어지며, 5월 13일 ‘외로운 여성, 교회를 감싸다’. 5월 20일 ‘성당이 된 책’, 5월 27일 ‘칠글, 질투를 극복하다’. 6월 3일 ‘여성, 경제를 감당하다’, 6월 10일 ‘유교와 천주교, 여성’을 주제로 강의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1년 05월 02일> 상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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