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구니들의 큰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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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4-08-19 10:24 조회4,402회 댓글0건본문
[기고] 비구니들의 큰 각성을 촉구한다!
‘비구니 호계위원’ 부결, 무엇을 위한 반대인가?
“같이 죽자는 것이야?, 같이 살자는 것이야?”
4번째의 비구니 호계위원 진출에 대한 부결이 났을 때 일각에서 터져 나온 일성이다.
그렇다!! 우리는 다종교의 한국사회에서 힘을 합쳐도 살까 말까하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가장 신뢰하고 동반 성장해야 할 이부출가승인 비구니들이 비구들에게 서로의 신뢰를 묻는 이 문제에 대해 그들은 ‘역시나’ 그 팔을 뿌리치고 말았다. 우리는 절망하는 일뿐 아니라, 이제는 영영 고개를 돌릴 판이다.
처음부터 부당한 일이었는가? 우리가 부당한 것에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말인가? 호계위원과 법규위원 진출의 이야기는 15대 비구니 종회의원들이 큰 이슈로 삼은 일이었다. 중간에 법규위원의 이야기는 슬그머니 접고 말았지만, 호계위원 진출은 그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 비구니의 심의를 비구니가 하게 해달라는 것이 그렇게도 부당한 것인가? 이것을 4차례에 걸쳐 부정하고 부결시킨 것은 승단의 문제는 물론이고, 커다란 인권 침해가 아닐 수 없다. 그 경직성에 놀라고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비구들은 언제나 ‘비구니 팔경법’이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품에 지니고 산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달라 직접 그 보도를 꺼내들고 공공연히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다. 이미 자신들의 DNA 잠재의식 속에 사무치도록 꼭꼭 숨겨놓고 언제라도 그 칼끝을 슬쩍 보이며 방해와 회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비구니 호계위원 진출 방해의 공작일 것이다.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를 표방하고 사부대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부대중은 언제나 편리한 구호일 뿐, 비구들은 그 특권을 누리며 문호를 절대 개방하고 있지 않다. 네 바퀴가 함께 굴러가도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위기 속에서도 비구들은 단지 ‘비구’라는 특권을 내세워 전도몽상(顚倒夢想)의 독야성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은 영웅이 없는 시대이다. 대중이 있을 뿐이다. 경계가 무너지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시대이다. 대중이 손을 맞잡고 모두가 행복한 길이 무엇인가 같이 고민하고 있다. 그런 시대에 선도적으로 앞을 헤쳐 나가야 할 종단 지도자들이 주춤거리고, 뒤를 자꾸 돌아보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음은 크게 개탄할 일이다.
한편, 나는 비구니 호계위원 진출 문제가 4차례나 시간을 들여 심의해서 결국은 그렇게 부결시켜야만 하는 중차대한 문제인가 묻고 싶다. 어이없는 일이다. 이번 일은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조계종 비구집단의 고루함과 비효율성, 그리고 시대착오적이며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모습을 드러낸 일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이런 논의로 세월을 보내고 있단 말인가. 더구나 부결시킨 것은 더 거론하기조차 민망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비구니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처음부터 쉽게 되는 일은 없다. 그래서 4차례의 각고를 겪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결과는 여지없는 부결이었다. 그렇다고 이 모든 노력을 무위(無爲)로 돌려야만 하는가?
비구니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즉각적인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모두 심기일전하고 강한 결속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모두들 ‘역시나’ 하며 고개를 떨굴 뿐, 어떤 위기의식이나 각오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이번 일을 주도한 비구니 종회위원들은 전원 사퇴를 말하지 않는가. 처음에 전원 퇴장했던 호기(豪氣)는 다 어디로 가고 성명서 하나 내지 않고 그저 얼굴만 돌리고 있는가.
며칠 남지 않은 종회의원에 일말의 미련이 남아서인가? 우리는 기득권의 말랑말랑하지 못한 경직성을 직시하고 새로운 각오와 위기의식 속에서 대중을 선도해나가야 한다. 한국불교 속에서 차지하는 비구니의 위상은 결코 작지 않음을 반드시 상기하여야 한다.
이번 일은 비구니 스스로 크게 각성해야 할 일이다. 외부에서 쓴 소리로 도와주더라도 내부에서 자성과 각오의 결의가 터져 나오지 않는다면 그 누가 우리를 도와준단 말인가.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 만을 돕는다’ 하였다. 세계 불교 속에서, 한국 종교사회에서, 조계종 안에서 차지하는 비구니의 위상이 결코 적지 않음을 거듭 뒤돌아보고 이를 계기로 삼아 더욱 더 내실을 다지고 정예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이번 일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비구니 지도부들은 깊은 반성과 자각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인 참여를 하여야 한다. 자조적이며 냉소적인 것은 이미 넘어섰지 않는가? 우리 앞에는 여러 가지로 계속 이어져야 할 일들이 있다. 절대로 위축되지도 말고, 당당하게 우리가 꿈꾸는 ‘모두가 행복한 세계’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들 선배 비구니들은 용감히 시대를 앞장 서 왔다. 이 땅에 우리의 힘으로 불국토 실현의 꿈을 절대로 놓을 수는 없다는 큰 결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불교포커스 2014.08.18> 원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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