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게 만드는 일, 살림에 주목하다, <살림의 정신은 보살, 살림 페미니즘> 후기 / 이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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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0-12-23 12:55 조회2,641회 댓글0건본문
살아가게 만드는 일, 살림에 주목하다, <살림의 정신은 보살, 살림 페미니즘> 후기
/ 이규린
지난 12월 2일,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에서 세 번째 강의인 ‘살림의 정신은 보살, 살림 페미니즘’이 진행되었다. 김정희 가배울 사단법인 대표가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살아있는 것을 살게 만드는 살림과 살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살림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살림’은 ‘죽임’의 반댓말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칸트의 정언 명령이 ‘그대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게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이고, 살림의 정언명령은 ‘살아있는 것을 살게 하라’이다. 또한, 살림의 의미는 단순히 가사노동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살림은 경영의 의미를 내포한다. ‘나라살림’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살림 페미니즘은 여성과 동물을 착취하는 억압의 연쇄에서 벗어나 먼 선사시대 여성들의 집단적인 깨달음 이자 살아있는 것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인 ‘살림 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살림 페미니즘은 집단 영성인 ‘살림 얼’을 우리 모두가 내재하고 있다는 믿음 하에 전개된다.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우리 안에 갖고 있는 ‘살림 얼’이 인도하는 길에서 종종 벗어나기도 한다. 살림 페미니즘은 ‘살림 얼’로 다시 회귀하기 위해 성찰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자하는 방향성을 품고 있다.
이원론을 따르지 않는 살림 페미니즘
우리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익숙하다. 인간과 자연,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백인과 유색인, 여성과 남성. 양극단의 것이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원론적 세계관 속에서 육체는 정신의 속성을 갖지 않고, 정신은 육체의 속성을 갖지 않는다.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은 차별을 만들기 쉽다.
근대사회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따랐던 시대인 만큼, 성차별적인 시대였다. 이는 근대 철학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여성은 이해를 잘 못하고 감정과 분노에 쉽게 따르는 경향이 있다. 또 대부분 예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해도 없으며 그에 대한 재능은 찾아 볼 수 없다.”
여성을 감정적인 동물로 치환하며 예술에서 배제하는 이 발언은 누가하였을까? 진보적인 성향으로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남긴 말이다. 그는 평등과 자유를 바탕으로 철학을 펼쳤으나, 이원론적인 세계관 하에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었다.
“여자가 정부의 우두머리가 된다면 국가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여자는 보편적 요구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일시적 기분과 우발적 의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위의 말은 독일의 이상주의 철학에 매듭을 지었다고 평가 받는 프리드리히 헤겔의 발언이다. 모든 여성을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결정을 내리는 비합리적인 존재로 표현하며, 여성의 정치 참여에 반색을 표했다.
이러한 성차별적은 발언은 이원론적인 세계관에서 기인한다.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은 차별적 편견을 쉽게 형성한다. 이원론적 세계관 안에서 여성과 남성은 다른 속성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여성은 감성적이며 남성은 이성적이다. 이원론적인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면 차별은 쉼없이 탄생한다.
반면에 살림 페미니즘은 전일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살림 페미니즘은 불교의 교리 중 하나인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를 긍정한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이 명구는 색이나 공에 대한 분별과 집착을 떠나 실체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살림 페미니즘의 세계관 속에서는 세상이 모두 하나의 유기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인도의 생태철학자 사티쉬 쿠마르의 어머니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
“애야, 너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단다. 네 안에 너의 영혼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 울창한 상수리나무를 갖고 있는 도토리처럼 말이야.”
살림에 주목하라
가부장제는 예로부터 살림을 하등시해 왔다. 살림을 여성만의 것으로 떠밀고, “너를 희생해서라도 가문과 자식을 살려라”라고 명령한다. 살림의 몫을 여성만의 것으로 두지 말고,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살림 페미니스트인 김정희는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의 가해자 조주빈에 대해서 ‘그러한 악인은 육아를 받지 못했기에 탄생하였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혜성처럼 등장한 악인이 아니다. 악을 방치하는 사회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악심은 서서히 자라고, 이윽고 미성년자 여성을 협박하여 성을 착취하고 ‘죽임’으로 내모는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성장과정을 조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악인이 다시는 탄생하지 않도록 ‘살림’에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살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타인과 나 사이에 경계선을 긋지 말고, 서로가 서로를 엄연한 생명으로 여기며 함께 살림의 길을 걷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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