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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의 평등함을 위하여, <불교, 에코페미니즘, 오래된 여성문명의 회귀> 강의 후기 / 이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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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0-12-23 12:57 조회2,1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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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의 평등함을 위하여, <불교, 에코페미니즘, 오래된 여성문명의 회귀> 강의 후기

 

/ 이규린



지난 11월 25일, '2020 나를 정화하는 불교페미니즘'의 마지막 강의 ‘불교, 에코페미니즘, 오래된 여성문명의 회귀’가 진행되었다. 현경 미국 유니언신학대 교수이자 관음젠스쿨 불교법사 겸 살림이스트가 진행하였다. 현대 문화에서 쉽게 버려지는 자연에 관한 이야기와 여성과 자연의 공통점, 불교와 페미니즘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실천하는 시간을 갖었다.

 

페미니즘이 불교에게, 불교가 페미니즘에게

 

현존하는 모든 종교는 가부장적 문화에 의해서 왜곡되어 있다. 모든 생명이 이어져있음을 인정하고, 평등을 쫓고자 하는 불교마저도 가부장제를 피해가지 못했다. 전생에 덕을 쌓으면 남자로 태어나고, 전생에 덕을 못 쌓으면 여자로 태어난다는 ‘여성업설’, 여성의 몸으로는 성불하지 못한다는 ‘여성불성불설’등, 불교는 불평등적인 사상이 내재하였다. 평등을 가르침으로 삼는 불교가 어째서 이러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다음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전, 현경 교수는 해외의 스님이 한국에 입국하였을 때 통역을 맡았다. 스님은 한국의 절에서 방문하였고, “비구니들은 일어서서 비구들에게 절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더니 해외의 스님은 비구를 향해서 절하기를 잠시 망설였다고 한다. 옆의 비구니들이 절을 하니 따라서 절을 하고는, “이것이 한국 불교인가요?”라고 현경 교수에게 물어 보았다고 한다. 같은 불교이더라도, 비구를 향해서 절을 하는 문화는 국가에 따라서 공통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현경 교수는 이에 대해 한 마디 덧붙였다. “이는 한국 불교라기보다는, 한국의 가부장제였다.” 비구니가 비구에게 예를 갖추어야 되는 것은 여자가 남자를 받드는 전통의 연장선이었다. 즉, 이것은 ‘한국식 불교 전통’이었다.

 

평등을 가르침으로 삼는 불교에 불평등한 사상과 문화가 잔존하는 이유는 종교는 각 나라의 문화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국가가 갖고 있던 문화적 전통, 추가로 덧붙여지는 남성 중심의 해석이 불교에 개입되며 불교의 불평등적인 전통을 만들어낸다. 불교의 오랜 역사만큼, 불교 속 가부장제는 차곡차곡 쌓여왔다.

 

“불교가 입고 있는 오래된 때를 벗겨주는 이태리 타올이 페미니즘이다.”

 

현경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페미니즘은 불교가 입은 가부장제라는 때를 벗겨줄 것이고, 불교는 페미니즘이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코스모 비전(사회 또는 문명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제공할 것이며, 불교와 페미니즘이 만나면 더 많은 가능성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불교와 페미니즘은 끊임없이 서로 대화해야하는 파트너”라고 표현하였다. 불교,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은 모든 생명의 존엄과 모든 생명의 평등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상이다. 불교와 페미니즘은 만날 수 있는 면적이 넓다.

 

자연과 여성, 그리고 연기론

 

자연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 대한 억압은 생명이 아닌 물질로 여겨지는 등, 매우 유사한 형태를 취해왔다.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과 자연이 비슷한 처지라는 것은 플라톤의 이원론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플라톤의 이원론 속에서 남자는 문화로 비교되었고, 여자는 자연으로 비교되었다. 비물질적인 것은 고상적이며, 육체적·지구적·여성적인 것은 하등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나아가 모든 존재는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며 ‘존재의 사다리’를 제시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치는 신, 남자, 여자, 아이들, 노예 남자, 노예 여자, 노예인 아이들, 동물, 식물, 광물 순으로 높다. 자연의 일부인 광물은 존재의 사다리의 맨 밑바닥에 있는 죽은 존재였다.

 

에코페미니즘의 눈으로 보면, 이원론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는 불교의 사상 ‘연기론’은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매우 유익한 세계관이다. 이원론 속에서는 인간의 문명과 자연은 별개의 것이기에, 자연이 죽어도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생명이 죽으면 자신도 죽는 것이 생명이다. 자연이 죽으면 인간이 죽는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사라지기에 이것도 사라지는 연기론의 세계관이 현실 속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더 가깝고, 자연과 인간에게 더욱 유익하다.

 

우리는 자연을 착취할 정도로 무분별한 탐욕의 자본주의,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타인을 죽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쟁이 존재하는 ‘죽음의 문화’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문화는 생명을 착취하며, 점점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생명의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남성의 세상에서 남성과 평등해져 똑같은 파이를 받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여성을 향한 억압과 자연을 향한 억압이 모두 부서지고, 모든 생명이 생명으로서 존중 받는 세상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 또한 우리의 미래에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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