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외치며 촛불 옮긴 여성들…"그리스도 몸인 교회는 포용적이고 성평등한 공동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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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종교와젠더연구소 작성일22-06-07 09:54 조회1,594회 댓글0건본문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촛불을 든 첫 번째 사람이 옆 사람 초에 불을 옮겨붙였다. 불을 붙인 사람은 또 옆 사람에게 전달하며 초에서 초로 불을 옮겼다. 촛불이 이어지는 동안 독일 노래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가 울려 퍼졌다.
"그 촛불 밝고 따스히 타올라. 우리의 어둠 살라 버리고.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이 빛이 빛나는 이 밤.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그 어떤 일에도 희망 가득.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세계교회협의회(WCC) 11차 총회 한국 동행 모임 일곱 번째 예배가 3월 30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한국정교회 성니콜라스대성당에서 열렸다. 교계 여성 단체 8곳이 준비한 이날 예배는 '애가: 여성들 탄식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참가자 40여 명은 성폭력과 젠더 폭력에 대한 저항과 회복을 의미하는 검은 복장을 하고, 여성 간 연대를 상징하는 보라색 스카프를 둘렀다. 이들은 탄식과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성구를 낭독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성평등한 교회를 염원했다.
각 현장의 활동가들은 △교회 성폭력 피해 생존자 △페미니즘 백래시(backlash) △교회 내 성평등과 정의로운 공동체 △차별·소외 없는 성경 읽기와 설교 △여성 지도력을 주제로 기도했다. 차별과 폭력을 겪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날것 그대로 이어졌다.
교회 성폭력 생존자 '햇살'의 글을 기도로 각색한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이은재 간사는 "당신은 나의 하나님인가, 나를 강간한 목사의 하나님인가. 나의 방주, 나의 피난처, 나의 전부였던 교회는 문턱에만 닿아도 두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하게 만드는 장소가 되어 버렸고, 나를 강간한 목사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교회는 그 목사의 것이었고, 나는 교회가 무서워 숨어 버렸다"고 말했다.
믿는페미 새말 활동가는 "여성 혐오로 가슴이 썩어 가는 하나님, 교제 살인으로 죽어 가는 하나님, 존재가 지워져 버리는 하나님, 발버둥쳐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어 조용히 죽음을 선택하는 하나님,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나는 하나님, 성별 임금격차로 이등 시민 취급받는 하나님,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하나님, 당신의 딸들과 함께 마녀로 손가락질받으십시오. 썩은 심령을 안고 광장에서 울고, 웃고, 외치십시오. 우리는 끝내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으며,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입니다"라고 기도했다.
한국YWCA연합회 이한빛 간사는 "너무도 쉽게 '여성'으로 이름 지어지는 출생의 순간부터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나눠지고, 배제되고, 소외돼 왔다. 우리는 이성적이지 못한 감성적인 존재로, 능력이 부족해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피를 흘리는 부정한 존재로 낙인찍혀 왔다. 우리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찾고 있다. 하나님의 딸·아들의 경계를 넘어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존재들이 동등하게 살아가는 안전한 공간을 이 땅에 세우기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이경숙 목사는 "수많은 해석과 설교가 오직 남성들만이 제자의 자격이 있고 교회를 치리할 수 있다고, 성서가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고 하며 우리의 귀와 마음을 억울하게 만들고 있다. 주님은 차별하지 않는 분이고, 주님의 말씀은 남성들만의 전유물도, 남성만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성들에게 차별적인 세상의 논리를 바로 볼 수 있는 눈과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는 능력을 달라. 교회의 모든 설교가 성서를 차별 없이 해석하고 선포해 여성들을 치유하고 주체로 세우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움트다 이현주 운영위원은 "아직도 교회들은 남성 지도력은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여성 지도력은 불편하게 여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지도력을 세울 때 여성은 첫 번째 고려 대상이 아니다. 여성 담임목사, 여성 장로, 여성 청년회장은 여전히 드물다. 자매들이 어떤 자리에 어떤 여성 리더십으로 서더라도 놀라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 주님께 부름받은 누구나 성별과 상관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교회를 기쁘고 당당히 섬길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움트다 최규희 목사는 가나안 여성 '사랑, 경계를 넘어서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본문은 마태복음 15장 21~28절로, 가나안 여인이 자기 딸을 위해 예수에게 찾아와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라며 간청하는 장면이다.
최 목사는 가나안 여인이 '존재를 향한 사랑'으로 경계를 넘어섰다고 했다. 그는 "가나안 여인은 신의 자비에는 편견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가 경계를 넘어서 움직이고, 말하고, 행동한 동기는 공동체로부터 단절되는 고통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잃어버린 존재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예수님의 태도로 대변되는 당시 유대 관습과 문화를 당당히 마주하고 끈기 있게 문을 두드렸기에 마침내 딸의 치유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예수가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는 사회·문화적 경계를 넘어서도록 만들었다고도 했다. 최 목사는 "유다 남성과 이방 여성이 서로 상종할 수 없었던 당시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볼 때, 붐비는 길가에서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과 마주해 대화하시는 모습은 하나의 '스캔들'이었을 것"이라며 "교회에도 오랜 유교 문화와 가부장적 관습이 눈에 너무 선명하게, 또는 눈에 보이지 않게 남아 있다. 남성과 여성을 나누고,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를 나누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고,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를 나눈다. 우리는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회적·문화적 관습을 과감하게, 스캔들을 자처하면서라도 넘어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루신다'는 WCC 11차 총회 주제를 생각할 때, 과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끄시는 포용적이고 성평등한 공동체인지 돌아봐야 한다. 혹시 교회가 오늘 본문 초반부에 나타난 예수님의 태도처럼 자신들의 원칙에 갇혀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오늘 이 이름 모를 여인처럼 눈에 보이는 현실에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노래하는 우리가 되기를, 교회가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기를 기도한다."
설교 후에는 성찬식 대신 베이지색 리본에 각자 메시지를 적었다. 참가자들은 젠더 폭력과 성폭력에 저항하고 연대한다는 메시지를 적어 커다란 보라색 천 위에 올렸다. "슬픔과 절규의 외침이 웃음과 희망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연대는 멈추지 않아!", "성차별·성폭력 없는, 차별과 혐오 없는 하나님"이라는 내용이 줄을 이었다. 이들이 작성한 내용은 WCC 11차 총회 장소에 설치되는 '연대와 저항의 벽'에 전시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2021년 강남역 여성 혐오 범죄 5주기 연합 예배에서 만든 '여성들의 주기-도문'을 외우며 예배를 마쳤다. 여성들의 주기-도문은 기존 주기도문을 여성들의 시선과 경험을 반영해 재해석한 기도문이다. 혐오와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과 함께하고, 차별에 맞서는 싸움을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WCC 한국 동행 모임 예배는 5월까지 이어진다. 여덟 번째 예배는 '이주민'을 주제로 4월 27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린다. 장소는 추후 공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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