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12월 7일, 윤석열 탄핵 및 체포를 위한 집회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던 건 시선을 사로잡는 다양한 깃발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인 시민사회 단체와 대학생 연합 깃발 사이에서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나, 혼자 나온 시민’, ‘전국 정신의학과 개근 환자 협회’ 등 센스있는 문구들이 집회 참여한 모두에게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줬다. 다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도 있었다. 여전히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집회 속 혐오를 마주하며
비상계엄 사태 다음 날인 12월 4일, 안부 통화해서 어머니는 “윤석열 마누라 때문에 이게 뭔 짓이냐”라는 이야기로 카톡방이 시끄럽다고 말했다. 12월 7일, 집회 현장에서 화장실 줄을 서면서 집회 참가자가 “쥴리 계엄이다”, “김건희 미친년”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단상에서는 집회 진행자가 “윤석열 정신병원 보내야지요. 여러분” 같은 외침을 마이크로 외쳤다.
총으로 시민을 협박하며,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권력자와 그 일당을 표현할 때 왜 여성을, 정신질환자를 빗대서 표현하는가? 윤석열이 내란을 시도한 원인은 김건희 여사 때문인가?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비판할 때 제왕적 권력을 추구하며, 소수자를 탄압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부정하는 윤석열과 그의 권력에 호응하는 세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 게 아닐까?
‘미쳤다’, ‘정신병원 보낸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언행들은 윤석열의 만행을 개인의 정신 문제로 치부한다. 이들의 행동에 대한 원인이 ‘미침’에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윤석열과 김건희에게 권력을 준 우리 사회에 질문해야 한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2024년 윤석열 대통령까지 이어오면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또 다른 미래에는 페미니즘 언어가 필요하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시스템은 무엇인가? ‘여가부 폐지’ 공약에 결속된 안티페미니즘, 구조적 차별은 없다는 정치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세웠다. 그 결과, 백래시는 더욱 가속화됐다. 교제살인과 딥페이크 성범죄가 난무했고,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죽이는 여성혐오 범죄가 일어났다. 약 3년간 여성과 소수자를 죽이던 제왕적 남성성의 말로는 ‘쿠데타’였다. 우리는 이에 분노하며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성차별, 혐오, 폭력의 문제를 막아내야 한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한국 사회 페미니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광장에도 페미니즘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존재했다. 지난 7일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는 단상에서 여성혐오적 언행이 동료 시민을 불쾌하게 만들고 여성과 소수자가 집회라는 공간을 떠나게 한다며 광장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심 활동가가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 일부 시민들이 보인 야유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백래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집회 현장은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한다. 한 사람의 제왕적 권력에 대한 분노와 함께 노동권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 남성성이 만들어낸 폭력에 맞서 대항하는 사람들, 정상과 비정상의 규범을 해체하고자 하는 사람 등이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집회에 나온 모든 이들의 목소리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정상성에 어긋난다며 이들을 부정하며 방해하는 사람의 외침은 윤석열의 제왕적 권력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민주주의 시간』에서 민주주의를 집으로 비교한다. 튼튼한 집을 얻기 위해서는 바닥이 안정적이고 기둥이 잘 받쳐준 상태에서 지붕을 얹어야 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채택하는 것에 그쳐서는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집이 부실하면 보강 공사가 필요한 것처럼 민주주의는 완성된 형태가 아닌,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성된 언어다.
그 미완의 언어를 채우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폭주하는 남성성을 끝내기 위해 수많은 페미니스트와 여성들이 거리에 나섰다. 신당동 여성 살해 사건을 비롯해 N번방 딥페이크 등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는 수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방관하던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낸다. 한 손에는 NCT의 응원봉을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윤석열 퇴진 피켓을 든 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다.
사랑을 티내는 것에 거리낌 없는 이들은 응원봉을 통해 서로를 마주한다. 이들은 피켓과 응원봉을 들고 서로에게 초콜렛과 핫팩을 나누며 연대한다. 각자 좋아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모인 여성들은 소박하지만 끈끈한 연대를 통해 일상을 빼앗는 이들에게 저항하며, 윤석열 파면을 외친다.
여성주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민주사회를 세우기 위해선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 미래를 페미니즘으로 채워보자. 다양한 깃발과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말한다. 다른 미래를 그려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평화와 페미니즘의 언어라고.
출처: 여성신문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5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