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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낯선 사이: 성희롱이 취사선택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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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1-09-23 21:33 조회1,8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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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낯선 사이> 성희롱이 취사선택될 때   

 

외국어 번역어 가운데 ‘성희롱’만 한 심각한 오역도 없을 것이다. 영어의 ‘sexual harassment’가 성희롱(性戱弄)이라니. ‘harass’는 학대하다, 함부로 하다, 지속적으로 괴롭히다 등 ‘질 나쁜 폭력’을 뜻한다. 그러나 성적인 농담, 희롱으로 번역되면서 가벼운 의미의 ‘수작, 집적거림, 지분거림’ 등으로 변질되었다. ‘성희롱’은 가해자에게, 범죄를 장난이나 실수로 정당화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했다(일본어에서는 ‘섹슈얼 하라스먼트’를 줄여서 그냥 ‘セクハラ’라고 쓴다).

 

젠더 관련법의 운명은 ‘누더기 법’이다. 제정과 동시에 개정이 논의된다. 처음부터 남성 문화의 견제 속에서 후퇴를 거듭하여 제정되기 때문에 시행하자마자 현실과 충돌한다. 성희롱 관련 내용은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시작해 현재는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세 법이 다루는 영역, 피해 대상, 보호 법익은 제각각 상이하다.

 

현행법도 의미가 다른 데다 사회적 통념, 여성주의 관점, 피해자와 가해자의 해석은 더욱 천차만별이다. 사기나 절도 등의 범죄는 이렇지 않다. 결국 사건은 법 운용자의 개인적 인식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이들 의식의 변화를 위해 여성운동은 필수적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성희롱을 둘러싼 논란은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위에 적었듯이 사회 구성원마다 성희롱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과 경합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등장했다. 다른 범죄는 기본적으로 피해 상황을 중심으로 법이 운용되지만, 여성이 당하는 폭력(gender based violence)은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낮으므로, 그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것이 피해자 중심주의다. 즉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가해자와 사회를 설득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말이 무조건 객관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둘째, 성희롱이 성적 수치심에 관한 문제인가, 인권과 폭력에 관한 범죄인가이다.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문제라면, 수치심의 의미는 누가 정하고 수치심은 어떤 종류의 피해인가. 정인진 변호사의 지적은 중요한 참고가 된다. 성희롱이 수치심을 주는 범죄라면,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꼈는지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것 자체가 이미 가해자 중심의 사고라는 것이다. 누구든 그런 일을 당하면 우선 놀라움, 역겨움, 굴욕감, 두려움을 느낀다. 대개 여성들은 수치심보다 ‘성적 빡침’과 같은 분노를 느낀다(정인진의 청안백안, ‘성적 수치심과 젠더 권력’, 경향신문 2021년 8월2일자).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일상은 성희롱의 연속이다. 나 역시 수치심보다는 분노가 앞선다. 내 강의를 들은 남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정 선생, 참 물건이네.” 여기서 ‘물건’의 의미가 무엇일까. 회의 중에 만난 또 다른 남성은 “분(粉)내 안 나는 아줌마(나) 옆에 앉아야, 나중에 (성희롱) 누명을 안 쓰지”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두 경우 모두, 나는 단지 매우 불쾌했을 뿐이다. 물론 이런 사안을 모두 법정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시간강사로 일할 때, 대낮 버스 정류장에서 칼로 위협하는 가해자에게 구강 성폭력을 당한 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타액을 삼키지 않고 근처 경찰서로 뛰어가 증거로 제출했다. 유전자 검사로, 상습범이었던 범인은 바로 체포되었다. 나는 그녀의 용기와 지혜를 칭찬했고, 그녀도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곧바로 일상에 전념했다. 정작 그녀를 괴롭힌 이들은 경찰이었다. 담당 경찰은 ‘훼손된’ 그녀의 인생을 걱정하면서 추가 조사를 명분으로 학생을 자주 불러냈다. “얼마나 힘들었느냐” “내(경찰)가 도울 일이 없느냐”며 불필요한 만남을 요구했다.

 

‘그때서야’ 그녀는 본격적으로 분노했다. “저는 수치심을 느끼지도 않았고요, 힘들지도 않아요. 공부해야 하니 그만 부르세요”라고 말했지만, 경찰은 그녀의 결혼까지 걱정했다. 결국 내가 경찰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수치심을 느껴야 할 사람은 당신이다, 왜 피해자가 느끼지도 않는 수치심을 느끼라고 강요하느냐.”

 

지금 성적 수치심 개념은, 여성은 성적으로 수치심을 당한다는 혹은 당해야 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남성 문화가 여성을 보는 시선, 이것이 성적 수치심이다. ‘여자는 몸 간수가 중요한데, 몸에 기스가 났으니 참 창피하겠다’는 식이다. 개인에 따라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남성 문화가 투사한 ‘성적’ 수치심이어야 하는가?

 

나는 오히려 남성들이 성적 수치심에 취약하다고 생각한다. 발기가 안 될 때 수치심을 느끼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적절치 않은 상황에서 발기가 될 때, 스스로를 ‘짐승’처럼 느낄 수 있다. 여성의 수치심이 성(性)과 관련될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남성 사회의 비난 때문이지 ‘여성=성적 수치심’이라는 공식은 없다. 왜 성희롱 개념에 수치심이 필수적인가? 왜 분노를 느끼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가? 가해자는 피해자의 수치심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셋째, 여성에 대한 폭력이 범죄 자체로 다루어지지 않고, 가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가시화되기고 하고 묻히기도 하고 형량이 달라지는 현실이다. 한마디로, 가해자의 지위가 피해자의 지위까지 결정한다. 그래서 유명 남성의 성범죄가 주로 보도된다. 직장, 노조, 시민사회, 학교 등 조직 내 성폭력 상담을 하다보면, 의외로 쉽게 정의가 실현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그 이유가 피해자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남성들 간의 권력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대개 조직 내에서 힘이 없거나 상사가 평소에 쫓아내고 싶어 했던 이들이다.

 

이 문제는 사회적 모순으로서 젠더의 인식론적 지위와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보편적 인권 위반이나 피해 정도에 따라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남성 간의 권력관계에 의해 좌우된다. 여성 주체도, 젠더 권력 개념도 삭제된다. 군 위안부 이슈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가 간·민족 간 피해로만 인식될 때 사람들은 쉽게 분노한다. 이때 여성에 대한 폭력은 ‘피해자 중심주의’가 되지 못하고, 남성 사회의 이익에 맞게 협상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요즘은 남성 조직뿐만 아니라 여성 조직에서도 여성끼리의 이해관계에 성희롱이 동원되는 경우가 있다. 현재 소송 중인 모 사건은 이후 중요한 판례가 될 만하다. 직원이 모두 여성인 정부 산하기관에서 몇몇 직원이 평소처럼 퇴근 후 술자리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성적 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성적인 질문’은 성희롱이라며 이를 상급자에게 신고했다. 관련된 이들을 조사했으나 피해는 입증되지 않았고, 이 사건은 합의로 끝났다. ‘피해자’는 이 사실이 조직에 알려지기를 원했으나,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이에 분노한 피해자는 자신에게 ‘성적인 질문’을 한 동료의 개인사를 조직 내에 폭로하며 성희롱 가해자라고 주장했다(범죄 사실과 무관한 개인사를 말하거나 입증되지 않은 가해 사실을 발언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자 처음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지목되었던 여성 역시 자기도 성희롱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두 명의 여성이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것이다. 신고했으나 입증되지 않은 피해자와 증거(개인 신상 폭로)가 있는 피해자. 이들에게 ‘피해자 중심주의’를 적용한다면 누가 피해자인가.

 

문제는 이때부터다. 두 여성이 모두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요청에 따라 해당 기관장은 직원들과의 소통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정작, 이 기관의 상급 부처는 이 회의를 ‘비밀 누설’이라며 절차를 무시하고 기관장을 일사천리로 해고했다. 이 사건은 ‘여성계’에 큰 파란과 충격을 주었는데, 사건의 본질이 직원 간의 ‘성희롱’이 아니라 기관장 해임 구실로 활용한 정황과 증거가 명백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보 인사로서’ 공직에 진출한 여성들이 돈과 자리, 횡령, 논문 절도 등 자원 쟁탈전에 조직과 기관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각자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세운 여성들 간의 성희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제 여성도 젠더 폭력을 경쟁자 제거 등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정치화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현실. 이제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 사회뿐만 아니라 일부 여성주의자들의 부패와 무지와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8250300065#csidx8e16f4778d8a9e1ac537fa38df87279onebyone.gif?action_id=8e16f4778d8a9e1ac537fa38df87279 출처: 2021.08.25 경행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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