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중년남성을 조롱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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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12-30 20:23 조회3회 댓글0건본문
2030이 중년남성을 조롱하는 진짜 이유
정훈님이 생각하는 '올해의 단어'는 무엇인가요? 저는 단연 '영포티'입니다. 2010년대 중반에는 트렌드에 민감한 40대를 지칭하던 말이었던 '영포티'는 지금은 중년 남성을 조롱하는 일종의 멸칭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영포티' 밈(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및 콘텐츠)이 처음 쓰일 때는 젊어 보이고 싶어 하지만,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중년 남성들의 외양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자신이 멋지고 세련된 줄 아는 남성들을 놀리는 것이었죠. 스투시 모자, 솔리드 옴므 티셔츠, 나이키 신발, 오렌지색 아이폰 17 등등은 영포티의 상징이 됐습니다.
나아가 청년 남성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젊은 여성 직원에게 추근대는 남자 상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권위적인 '꼰대'들과 위선적인 군상들까지 모두 '영포티'로 지칭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문제적 중년 남성'을 비난하는 말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인권이나 페미니즘을 말하면, 혹은 단순히 자신들 입장에서 보기 싫은 나이 든 남성들을 모두 '영포티'로 부르더군요.
<나이키 신발 민망해서 못 신겠다…40대 직장인의 탄식>(한국경제)이라는 기사와 같이 중년 남성들 사이에선 "이런 걸 입어도 영포티냐"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미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느냐는 중요하지 않게 된 상황입니다. 지금 청년 남성들, 정확히 말하면 청년 남성들이 많이 가는 '남초 커뮤니티'의 주류적인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곧바로 '영포티'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요즘엔 다양한 의견들에 대한 토론이나 논리적 반박을 생략하고 "영포티가 영포티했네" 식의 조롱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온라인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결국 '영포티'는 특정한 외양이나 행동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중년 남성에 대한 청년 남성의 반감이 집약되어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왜 지금 '영포티'인가
그렇다면 왜 청년 남성들은 지금 시점에서 '영포티'라는 말로 기성세대를 비난하게 됐을까를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영포티'라는 말이 멸칭으로 쓰이게 된 시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22대 대선이 끝난 올해 하반기부터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2030 남성과 4050 남성의 정치 성향 대비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 지지율을 살펴보면 20대 남성 24%, 30대 남성 37.9%, 40대 남성 72.8%, 50대 남성 71.5%였습니다. 현격한 차이입니다.
'보수' 지지 성향의 2030 남성들에겐 이번 선거 결과는 마뜩잖았을 겁니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환호하는 이들도 눈엣가시였을 것이고요. 민주당 지지층의 핵심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기득권을 갖고 있는 4050 남성들에게 공격의 화살이 집중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라인에서 돌고 있는 '코리아 영포티 스타터팩'이라는 이미지는, '영포티'라는 말이 굉장히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사용되고 있다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030 남성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등을 살펴보면 여권 성향의 유튜브 방송인 '매불쇼'나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영포티들이 즐겨 보는 방송이자, '신뢰할 수 없는 콘텐츠'의 대명사처럼 폄하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정치적 인식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정년 연장 추진·국민연금 개혁안 등에 대한 반감 등 기성세대들에게 사회적 자원이나 기회가 과도하게 쏠려 있다는 청년 남성들의 인식도 '영포티'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청년(15~29세) 고용률은 19개월째 하락중이고, 취업이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상태의 30대 인구도 31만 명을 넘어선 상황입니다.
또한 일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회사에 고연차 직원이 훨씬 많은 역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주니어'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고 승진도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니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높은 직위에 있으며, 심지어 그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4050 남성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밖에요.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39세 이하 가구주의 평균 자산은 1년 전보다 0.3% 줄었습니다. 반면 40대와 50대 가구주의 평균 자산은 각각 7.7% 늘었고, 60대도 3.2% 증가했습니다. 405060이 자산을 서서히 늘려나가는 반면에, 2030은 자산이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여론을 뒤바꿀 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인구가 적습니다. 2002년 당시 노무현 열풍의 주역이었던 2030은 전체 인구의 35.02%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2030은 전체 인구의 25.12%에 불과합니다. 반면 2002년 당시 2030이었던 이들은 2025년엔 405060세대가 되어서 여전히 한국 사회의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40대 14.93%, 50대 16.76%, 60대 15.18%).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이들의 힘이 가장 센 상황입니다. 청년들 입장에서는 기성세대가 자원을 독식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고, 그 불만과 누적된 분노를 '영포티'라는 조롱으로 푸는 것이겠지요.
진보적 가치를 조롱하는 말로 쓰일 수도
정훈님, 그런데 왜 '영포티' 현상은 청년 남성의 '중년 남성' 공격이 된 것일까요? 살펴 보면 영포티는 대부분 남성에게 국한되어 쓰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년 여성이 중년 남성만큼 '기득권'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또 자신들의 '몫'을 빼앗는 라이벌이 아니라는 데서 기인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한편에선 청년 남성들은 또래 청년 여성들을 겨누고 있으니까요.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늘어나자, "오히려 남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안티 페미니즘'이나 '남성 피해자론'을 이야기하는 식으로요. 실제 임금격차를 비롯해 수많은 통계가 여전히 구조적 성차별이 극심한 사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이러한 청년 남성들의 '남성 피해자론'은 성평등과 같은 사회적 과제를 무력화시키고, 끊임없이 '역차별이 일어난다'는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중년 남성들을 공격하는 '영포티' 밈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단순히 위선적이거나, 갑질이나 성희롱하는 남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 말을 쓴다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진보적인 가치나 이념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곧바로 '영포티'라는 조롱이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충분히 고민하고 토론해야 하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의제를, '영포티'라는 말로 쉽게 튕겨낼 수 있는 분위기라면 보수화나 극우화는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고요.
〈시사IN〉·한국리서치 '6·3 대선 이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1]를 살펴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응답자의 61%가 찬성했습니다. 그러나 20대 남성은 29%만이 찬성해, 모든 연령/성별 중 가장 찬성 응답 비율이 낮았습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68%가 찬성했지만 20대 남성과 30대 남성은 각각 47%만이 찬성했습니다. 이 역시 모든 연령/성별 중 가장 찬성 응답 비율이 낮았고요. 이어 '고위 공직자 여성 할당제' 찬성 여부를 물어보자 20대 남성의 13%, 30대 남성의 19%만이 찬성했습니다 (전체 평균 45% 찬성)
반중정서도 굉장히 강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정선거에 중국이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동의한다'는 응답이 20대 남성에선 34%, 30대 남성에선 25%나 나왔습니다 (전체 평균 18% 동의). 또한 '중국의 보복으로 인해 한국이 경제적 타격을 입더라도 중국과 거리를 두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20대 남성의 57%가, 30대 남성의 55%가 동의했습니다 (전체 평균 37% 동의).
이런 상황에서, 기성 세대들이 소외계층의 기회 확대 등을 비롯한 진보적 가치를 이야기했을 때, '영포티'라는 말이 진보적인 가치를 조롱하면서 동시에 기각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논쟁이 불가능해지고 조롱만 난무하는 구조에서는, '반이재명(민주당)-반중-반페미니즘-반장애인-반차별금지'라는 일련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더 이상 '영포티'라는 말이 우습게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영포티'라는 멸칭을 넘어서는 법
"2025년 현재 2030 남성들은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생계부양자로서의 권능이 상실된 상황에서 전환기에 걸맞은 새로운 역할 모델을 부여받지 못했고, 스스로 찾지도 못했다 (...) 맞벌이 확산과 여성의 사회 진출, 안정적인 정규직 신화의 해체 등 노동시장이 빠르게 변화했으나, 남성에게 부과된 생계부양자로서의 전통적 성역할은 그 속도에 비례하여 빠르게 해체되지 못했다." (책 <광장 이후>, 155p, 158p)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의 2030 남성에 대한 분석은 현재의 2030 남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2030 여성들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전통적인 성역할을 깨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반면, 2030 남성들은 여전히 '생계부양자로서의 전통적 성역할'을 부수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 상황을 '가부장 되기를 원하지 않지만, 가부장 이외의 길을 모르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곤 합니다. '권위 있는 가부장'이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성공한 남성 모델'인 만큼, 그렇게 되고자 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여성으로부터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기분',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의 몫까지 독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분노와 박탈감을 키웁니다. 또래 청년 여성이든, 중년 남성이든 모두 자신의 앞길을 막는 적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이나 언론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고요.
혹자는 경제가 성장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 남성들의 분노와 박탈감이 사라질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한국은 저성장·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청년세대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하루아침에 나아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결국 지금 청년 남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확신이며, 이는 '생계부양자' '가부장'의 압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경로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데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남성들 스스로가 더 나은 남성의 삶을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공론장과 이를 뒷받침할 조직이, 나아가 정치가 필요합니다. 다만 그전에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들, 특히 정치권이 반성해야 될 지점이 있습니다. 한편에선 청년 남성들을 향해 "왜 민주당을 찍지 않느냐"라며 비난하고 무시했고, 또 다른 쪽에서는 '표'를 얻겠다면서 그들의 '혐오'까지도 모두 포용하고 가자는 식의 언사가 난무했습니다. 계몽도, 무조건적인 수용도 답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와 신뢰를 쌓아나가고,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도록 도와주는 일. 그것이 우리 사회가 '영포티'라는 멸칭을 넘어서는 방법일 것입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25.12.1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9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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