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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동아시아 불교 미술 속 여성의 존재에 주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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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4-07-24 11:33 조회3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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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동아시아 불교 미술 속 여성의 존재에 주목하다

 

 

기원후 1세기경 부처의 가르침이 동아시아로 전해진 이래 여성은 불교를 지탱한 옹호자이자 불교미술의 후원자와 제작자로서 기여해왔다. 불교 안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였고, 여성은 불교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이처럼 열렬히 귀의했던 것일까.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여성'의 관점에서 본격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지난 3월 27일 개막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한국, 중국, 일본의 불교미술에 담긴 여성의 이미지와 염원, 그리고 불교미술 후원자로서의 여성의 역할 등 다양한 각도에서 여성과 불교미술을 들여다본다.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찬란한 불교미술품 안에 담긴 여성들의 의지와 번민,염원을 동아시라는 큰 틀에서, 그리고 동시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본다.

 

전시 제목인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Unsullied, Like a Lotus in Mud) 은 『숫타니파타』(석가모니부처의 말씀을 모아 놓은 최초의 불교 경전)에서 인용한 문구로, 불교를 신앙하고 불교미술을 후원하고 제작했던 ‘여성’들을 비록 진흙에서 자라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청정한 ‘연꽃’에 비유했다.

 

2023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이후 재개관한 호암미술관의 첫 고미술 기획전으로 불교미술을 젠더적 관점에서 조망한 '세계 최초'의 전시인만큼 작품들의 규모와 수준도 가히 압도적이다. 전 세계 27개 컬렉션에서 출품한 한,중,일의 불교미술 걸작품 92건(한국미술 48건, 중국미술 19건, 일본미술 25건)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출품작 중 한국에서는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기증품’ 9건을 포함한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중앙박물관 등 9개의 소장처에서 국보 1건, 보물 10건, 시지정문화재 1건 등 40건을 선보인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보스턴미술관 등 미국의 4개 기관, 영국박물관, 독일 쾰른동아시아미술관등 유럽의 3개 기관, 도쿄국립박물관 등 일본의 11개 소장처에서 온 중요문화재 1건, 중요미술품 1건, 현지정문화재 1건 등 52건을 전시한다.

 

전시를 담당한 이승혜 큐레이터는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동아시아 불교미술 전체를 아우르는 전시는 이제껏 없었다"면서 " 시대와 지역, 장르의 구분을 벗어나 여성의 염원과 공헌이란 관점에서 불교미술을 조명하는 새로운 접근을 통해 전통미술 속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부 '다시 나타나는 여성', 2부 '여성의 행원行願'으로 구성된다.

 1부는 불교미술 속에 재현된 여성상을 인간, 보살, 여신으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지난 시대와 사회가 여성을 바라본 시선을 이야기한다. 호암미술관 로비 왼쪽의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 좁은 복도를 지나면 원형의 공간이 나온다.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하게 하는 1섹션 <여성의 몸: 모성母性과 부정不淨>에서는 조선 전기와 후기를 대표하는 불전도와 중국 원대의 백묘화, 고려시대의 변상판화와 일본 에도시대의 회화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불화의 향연을 통해 불교미술 속에 시각화된 여성의 유형과 의미에 대해 살펴 본다.

 

동아시아 불화 속에서 여성은 양가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가장 빈번하게 재현된 유형은 어머니로,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권위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석가탄생도〉와 석가모니의 부인인 구이(俱夷)가 등장하는 〈석가출가도〉 , 석가모니의 이모이자 양모로 최초의 여성 출가자가 된 대애도(大愛道)를 그린 〈이모육불도〉등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은 집착과 정념의 근원으로 간주되어 부정한 대상으로 그려졌다. 사람의 시신이 변해가는 아홉 단계를 보면서 수행하는 구상관(九相觀)에서 유래한 일본 무로마치시대의 〈구상시회권〉은 이러한 시선을 잘 보여준다. 

 

'석가탄생도'(3.27~5.5 전시)와 '석가출가도'는 15세기 조선에서 연작으로 그려진 작품인데 일본 혼가쿠지와 쾰른동아시아미술관으로 흩어졌던 것을 이번 전시를 통해 세계 최초로 동시에 선보인다. 보스턴 미술관 소장의 '이모육불도'는 중국 원나라 시대(14세기 전반) 작품으로 한국에서 처음 나란히 전시되고 있다. 마야부인을 중심으로 그려진 '석가탄생도'는 아쉽게도 5월5일까지만 전시될 예정이다.

 

2섹션은 <관음: 변신變身과 변성變性>이라는 제목으로 본래는 남성이되 모든 중생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는 뭇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대자대비하고 자유자재한 관음보살의 응신들이 눈 앞에 동시에 현현한 듯한 특별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7세기 백제에서 만든 '금동관음보살 입상'이다. 유리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26.7㎝짜리 불상은 아름다운 미소와 섬세한 표현이 최고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1907년 충남 부여에서 한 농부가 발견한 것이 1922년 일본인 수집가에게 팔려 갔고 1929년 전시된 후 소재 불명이었다가 2018년 개인소장자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화재청이 환수하려했으나 가격차이로 협상이 결렬됐던 것으로 이번에 어렵사리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되고 있다.

 

3섹션 <여신들의 세계: 추앙과 길들임 사이>는 고려시대 왕실과 민간에서 활발히 신봉했던 마리지천과 일본과 중국의 불화 속 부처의 감화를 받아 선신(善神)으로 거듭난 귀녀(鬼女)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을 교화시키고 길들여야만 하는 존재로 바라본 과거의 시선을 살펴 본다.

 

2부에서는 찬란한 불교미술품 너머 후원자와 제작자로서 여성을 발굴하여 사회와 제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기로서 살고자 했던 여성들을 만나 본다. 저고리 안에 쓴 발원문, 사경의 말미에 금물로 적은 기록, 불화의 붉은색 화기란에 빼곡히 적힌 여성들의 이름과 바람들에 주목한다.1섹션 <간절히 바라옵건대 : 성불成佛과 왕생往生> 의 공간에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사경과 복장 발원문이 펼쳐져 있다. 여성들은 여성의 몸으로 성불할 수 없다는 교리에도 불구하고 모든 제약을 넘어 부처가 되기를 꿈꿨다. 당대 최고 권력자의 아내 혹은 어머니였을 진한국대부인 김씨가 1345년 조성한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리움 미술관 소장, 일반 첫 공개) 이나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 발원문〉은 이 같은 차별적 시선을 내면화한 고려시대 여성들의 자기 인식과 이를 넘어선 성불에의 염원을 동시에 드러낸다. 반면 중국 원대 회화인 〈유마불이도〉에서는 남녀를 비롯한 모든 분별을 뛰어넘는 ‘불이(不二)’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지역을 막론하고 여성 신자들의 가장 보편적인 염원은 내세의 극락왕생이었다. 중국 10세기 〈인로보살도〉에서 보이는 이 같은 염원은 아미타여래와 보살들이 임종의 순간 서방에서 내려와 망자를 맞이해가는 모습을 그린 불화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고려의 〈아미타여래삼존도〉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아미타여래를 보좌하는 한국 불교 특유의 해석을 보여 주며, 함께 전시된 일본 16세기의 〈아미타여래이십오보살내영도〉, 중국 남송대의 〈아미타여래삼존도〉 등을 통해 각 지역의 독특한 해석을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다.

 

고려 후기인 1383년에 조성된 〈은제 아미타여래삼존 좌상〉은 비구니와 하층민 여성을 비롯해 500명이 넘는 시주자들이 정토 왕생을 꿈꾸며 발원한 불상이다.

 

조선은 불교를 엄격히 통제했으나 왕실 여성들은 〈궁중숭불도〉에서 보듯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불교를 지지했다. 사관과 유생들은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서경(書經)』의 구절을 인용해 왕실 여성들의 불사를 줄기차게 비판했지만 불교 교단은 조선 사회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품격 있는 불화와 불상이 대규모로 조성될 수 있었다.

 

종묘를 받들고 후손을 이어가는 일은 왕실 여성들의 가장 큰 의무였기에, 왕의 무병장수와 아들을 비는 이들의 발원에는 기복을 넘어서는 공적 측면이 있다.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문정왕후(1501~1565)가 발원한 〈영산회도〉와 〈석가 여래삼존도〉, 〈약사여래삼존도〉는 16세기 금선묘(金線描) 불화를 통해 한 시대의 불화 양식을 선도한 독보적인 후원자로서 왕실 여성의 영향력을 살필 수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안에서 발견된 〈금동 불감과 금동 석가여래삼존 좌상〉과 〈금동 불상군〉 또한 15세기와 17세기에 왕실 여성의 재정적 지원과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3섹션 <여공女工: 바늘과 실의 공덕>은 지금까지 간과되었던 자수와 복식을 여성의 일이자 예술이란 관점에서 새롭게 살펴본다.

 

자수와 바느질은 여성이 어릴 때부터 습득해야 하는 일이자 필수적인 미덕으로 간주 되었다. 불보살의 형상을 수놓은 자수 불화는 깊은 신앙심과 지극한 정성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으로 자수한 수불(繡佛)은 무량한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공양물이자, 부처와 머리카락 주인 사이에 직접적인 연을 맺을 수 있는 매개체로 여겨졌다.

 

일본의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는 부정하다고 여겨진 여성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부처의 형상을 구현하는 귀중한 재료로서 탈바꿈시킨 여성들의 구체적인 창작행위를 보여 준다. 〈백지금자 불설아미타경〉은 1621년에 인목왕후가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아들(영창대군)과 친정 일가붙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직접 필사하고, 인목왕후를 모시던 궁녀가 자수로 표지를 꾸민 사경이다. 망자가 생전에 아끼던 옷을 이용해 만들어진 승려의 가사나 불상을 조성할 때에 그 내부에 봉안한 의복에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공덕이 죽은 이를 비롯해 모든 이에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 일습은 1662년 나인 노예성이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인 경안군 부부와 동료 나인들의 장수를 바라며 불상 안에 봉안한 것으로, 저고리와 배자를 포함한 556점의 복장물이 13년 만에 모두 선보이는 것이다.

 

 

출처 : 컬처램프(http://www.culturelamp.kr)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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