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징병제: 평등과 지속 가능성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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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10-17 11:13 조회24회 댓글0건본문
이스라엘 여성 징병제와 ‘합리적 예외’
강선미 하랑젠더트레이닝센터 대표
여성 징병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겁고 논쟁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다. 군 복무의 의무를 남성만이 지는 현실을 두고, 평등을 위해 여성에게도 징병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회적 수용성과 안보 효율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맞선다.

이스라엘은 법적으로 남녀 모두가 징병 대상이지만, 복무 조건은 다르다. 남성은 약 32개월, 여성은 24개월 복무하며, 임신·출산·결혼·종교적 사유로 여성은 면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실제로는 여성의 30~40%만 군 복무를 이행하고, 나머지는 사회복무나 면제를 선택한다. ⓒWikimedia Commons By xiquinhosilva
지난 8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은 여성에게도 현역병 복무 기회를 열어주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핀란드식 ‘여성 자원복무제’에 가까우며, 여성에게 강제 징집을 부과하는 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저출산과 병력 자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보충 논리’가 앞세워지는 점은 우려스럽다. 자칫 강제 여성 징병제 도입의 논리로 비약할 수 있는 위험 때문이다. 과연 여성 징병제가 단순히 인구 감소로 인한 “병력자원 부족”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문제일까?

이스라엘은 법적으로 남녀 모두가 징병 대상이지만, 복무 조건은 다르다. 남성은 약 32개월, 여성은 24개월 복무하며, 임신·출산·결혼·종교적 사유로 여성은 면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실제로는 여성의 30~40%만 군 복무를 이행하고, 나머지는 사회복무나 면제를 선택한다. ⓒWikimedia Commons By xiquinhosilva
지난 8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은 여성에게도 현역병 복무 기회를 열어주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핀란드식 ‘여성 자원복무제’에 가까우며, 여성에게 강제 징집을 부과하는 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저출산과 병력 자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보충 논리’가 앞세워지는 점은 우려스럽다. 자칫 강제 여성 징병제 도입의 논리로 비약할 수 있는 위험 때문이다. 과연 여성 징병제가 단순히 인구 감소로 인한 “병력자원 부족”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문제일까?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여성 징병제를 유지해 온 나라다. 흔히 성평등의 상징처럼 소개되지만, 실제 내용은 다르다. 1948년 건국 직후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에 직면했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적었으며, 안보 위협은 상시적이었다. 이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인구를 군사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여성 징병은 바로 이런 전시 총동원 체제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일시적 조치에 머무르지 않고, 이후 ‘합리적 예외(reasonable exception)’를 내재한 징병제로 제도화되었다.
합리적 예외란, 평등 원칙을 전제로 하되 객관적·합리적 사유가 있을 때 제한적으로 다른 대우를 허용하는 장치다. 국제인권규약과 유럽인권재판소 판례에서도 확인되는 이 원칙은 네 가지 조건을 갖춘다. 첫째, 과학적·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합리성). 둘째,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만 허용된다(필요성). 셋째, 목적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범위여야 한다(비례성). 넷째, 상황이 변하면 예외는 축소·폐지돼야 한다(일시성).
이스라엘의 여성 징병제는 이 원칙들이 구체적으로 작동해 온 사례다. 법적으로 남녀 모두가 징병 대상이지만, 복무 조건은 다르다. 남성은 약 32개월, 여성은 24개월 복무하며, 임신·출산·결혼·종교적 사유로 여성은 면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실제로는 여성의 30~40%만 군 복무를 이행하고, 나머지는 사회복무나 면제를 선택한다. 잠수함이나 특수부대처럼 극한 환경의 직종은 제한적으로만 여성에게 개방된다. 여성은 전투부대보다는 행정·교육·의료·통신 등 지원 역할에 집중되어 있고, 전투직 참여는 최근 들어 확대되는 추세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남성 병사들은 “왜 여성의 복무 기간은 짧고 면제는 많은가?”라고 불만을 제기한다. 반대로 여성들 사이에서도 “동등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드론전·사이버전·정밀 무기체계가 중심이 되는 현대전에서는 전통적인 체력 격차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예외는 오랫동안 제도의 안전밸브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형평성과 성평등 요구 속에서 축소·재설계 압력을 받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맥락 차이를 분명히 짚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여성 징병제는 그간 합리적 예외를 내재한 제도로 변형되었지만, 여전히 전시 동원 체제의 성격이 강하다. 여성 징병제는 군 병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상시적 안보 위협의 산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맥락이 다르다. 한국은 이미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고 있고, 전면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남북 대치라는 안보 현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병력 부족 담론을 기정 사실화하는 것은 문제다. 왜 한국군이 여전히 50만 명 규모를 필요로 하는지, 기술 발전과 군 구조 개편을 통해 적정 병력을 재산정할 수 없는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 참여 논의는 성평등의 이름으로 포장된 단순 ‘병력 보충책’에 머물 위험이 크다.
만약 한국이 여성 현역병 복무를 제도화한다면, 그것은 ‘저출산으로 인한 병력부족 보충책’이 아니라,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는 나라로서는 처음으로 성평등 원칙을 안보 제도에 반영하는 역사적 전환이 되어야 한다. 여성 징병제나 여성자원 복무제는 남녀의 권리와 의무를 맞추자는 단순한 형평성 논리가 아니다. 안보 상황과 성평등, 병역제도 개선과 국방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맞물린 복합 과제다.
이스라엘의 경험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이 지금 논의해야 할 것은 병력 자원 부족의 보충 논리가 아니라, 인구·안보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유지 가능한 군 인력 구조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성평등 목표를 반드시 포함하는 복합적 제도 설계다. 최근의 관련 법안은 그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논의는 훨씬 더 깊고 치밀해야 하며, 실질적 제도화는 사회적 합의와 종합적 전략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2025.09.09
국민의 군대, 평화의 군대
강선미 하랑젠더트레이닝센터 대표
민주적 군대와 사회적 계약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1일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군은 헌법과 국민을 지키는 민주적 군대여야 한다”며 “군인의 명예는 국민의 신뢰에서 나오고, 나라를 지키는 일은 곧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권 환수와 자주국방, 첨단 무기체계 전환을 언급하면서도, 무엇보다 평화와 국민 보호를 강조했다. 이번 연설은 군을 단순한 무력 집단이 아니라 민주적 정체성을 가진 국민의 군대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군의 민주적 정체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안보는 무력 유지가 아니라 국민과 맺는 사회적 계약이기도 하다. 국민은 군복무, 세금, 재난 대응 같은 의무를 나누어 감당하고, 국가는 그 대가로 안전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남성에게만 복무를 지우는 방식은 오래된 계약 모델이다. 이제는 남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다층적 복무제도를 설계하고, 국가는 복무 경험을 능력 인증·경력 자산으로 환류시켜야 한다. 같은 임무에는 같은 기준을, 다른 임무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공정한 계약이다. 군이 ‘국민의 군대’로 신뢰를 얻으려면, 전투력이 아니라 이 계약을 지키는 능력이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UN 1325호와 국제적 기준
이와 관련해 여성 시민으로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자연스럽다. ‘그 계약 구조 속에서 여성은 어떻게 참여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가?’ 국제사회는 이미 2000년 UN 안보리 결의 1325호를 통해 여성의 참여가 평화와 안보에 필수적임을 합의했다.
1325호는 네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평화협상·안보정책에 여성 참여 보장(Participation). 둘째, 분쟁 상황에서 여성과 아동 보호(Protection). 셋째 갈등 예방 과정에 성평등 관점 반영(Prevention). 넷째 분쟁 이후 구호·재건에서 여성의 필요와 역량 반영(Relief & Recovery)이다.
이 결의는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노르웨이는 2015년 세계 최초로 성중립 징병제를 도입했고, 스웨덴은 2017년 징병제를 부활시키며 성중립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핀란드는 여성 자원입대를 확대했고, 독일은 해외 파병 시 여성 군인 배치와 성인지 훈련을 의무화했다. 이스라엘은 기존 여성 의무복무제를 국제 규범과 접목해 민간인 보호와 여성 군인의 현장 역할을 강조했다. 1325호는 유럽 각국이 “여성의 평등참여는 곧 안보 역량 강화”라고 주장할 수 있는 국제적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다.
여성의 정당한 참여 보장이 핵심

지난 2018년 스웨덴은 28명의 여성 군인을 말리(Mali) 평화유지임무(MINUSMA)에 파견했다. ⓒUN Photo/Harandane Dicko
그러나 한국에서 여성의 안보 참여를 말하면, 흔히 군복을 입고 전장에 나서는 이미지만 떠올린다. 여성 징병 논의가 곧 “여성을 전쟁터로 내몬다”는 우려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1325호가 말하는 참여는 전쟁 수행자가 되라는 권고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며, 파괴된 삶을 복구하는 전 과정에서 여성의 정당한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다. 여성의 평등참여는 총을 들라는 말이 아니라, 평화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길이다.
대통령의 연설이 강조한 ‘국민 보호’와 ‘평화’라는 키워드는 이 점을 다시 일깨운다. 군의 기술혁신과 방위산업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인공지능, 무인체계, 사이버 안보, 재난 대응 같은 새로운 안보 영역에 여성 인재가 참여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인구 절반의 역량을 방치하는 셈이다.
이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병역 개혁을 단순한 공정성 논쟁에 가두지 말고 국민 전체와 맺는 사회적 계약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둘째, 안보 정책의 전 과정에 여성과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셋째, 군 장비와 무기체계의 혁신이 실제 국민 보호로 이어지도록 성인지 지표와 국제 기준을 반영해야 한다.
‘국민의 군대’라는 선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한국은 민주적 군대로 거듭나는 동시에 여성과 다양한 시민 주체들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 한국형 안보 혁신의 출발점이며, 평화를 위한 군대의 새로운 길이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여성의 정당한 참여를 보장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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