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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남자들] ‘동의’에 동의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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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10-17 11:25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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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남자들] ‘동의’에 동의하시나요?

한정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성교육을 하다 보면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동의’다. 성적인 상황을 다루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흥미로워할 것 같지만, 의외로 반응은 미지근하다. “해도 돼?”, “할게” 같은 말만 주고받으면 동의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잖아요. 괜히 분위기 깨요”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럴 때면 정말로 ‘동의 계약서’를 써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 없기에, 늘 기본으로 돌아간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새로운 반성폭력·성문화 이정표, 적극적 합의’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적극적 합의’의 원칙은 다섯 가지다. ① 명시적으로, ② 의식이 있을 때, ③ 충분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④ 평등하게, ⑤ 모든 과정에서 항상 확인하기.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원칙을 달달 외운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동의는 완결이 아니라 과정, 즉 동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상대의 의사와 감각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감정적 교류를 지속하는 것이 동의다. “동의 했지?”, “동의한 거다?”라며 싸인했으니 끝났다는 태도도 아니고, 남성이 제안하고 여성이 수락하는 방식의 이분법적인 것도 아니다. 나와 상대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지금 나의 행위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충분히 고민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동의다. 즉 동의는 계속 확인하고 조율해야 하는 과정적 개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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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가 ‘새로운 반성폭력·성문화 이정표, 적극적 합의’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적극적 합의’의 원칙은 다섯 가지다. ① 명시적으로, ② 의식이 있을 때, ③ 충분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④ 평등하게, ⑤ 모든 과정에서 항상 확인하기.ⓒ한국성폭력상담소

‘동의’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인간이 ‘성적자기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은 흔히 ‘마음대로 성관계할 자유’로 오해되지만, 구나 자신의 성적 행동과 관계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족이나 애인 등 타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 누구와 무엇을, 언제 할지 등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기에 설령 애인이나 부부사이라고 하더라도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성적자기결정권의 핵심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동의를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 “뭐 먹을래?” 묻고, 그 날 먹고 싶은 음식을 조율해나간다. 하물며 매운 음식도 단계별로 나눠져 내가 원하는 맵기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런 미세한 협의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성적인 관계도 다르지 않다. 상대의 상태를 묻고, 신호를 읽고, 그때그때 조율하는 것이 ‘동의 문화’다.

그럼에도 “동의 구하다가 분위기 다 망칠걸요?”라는 말이 여전히 많이 나온다. 나는 늘 이렇게 답한다. “동의를 구해서 깨질 분위기였다면, 그건 애초에 분위기가 아니었던 거예요.” ‘자연스러운 분위기’라는 말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 일방의 기대나 상상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미디어 속 장면들이 만들어낸 오래된 각본에 가깝다. 남성은 리드하고, 여성은 수줍게 반응하는 익숙한 서사. 그러나 진짜 주체적인 관계는 “이렇게 해도 돼?”라고 묻는 순간 시작된다. ‘모두가 이렇게 하니까’가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진짜 합의가 있나’를 확인하는 과정이야말로 성적 의사소통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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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동의의 끝에는 즐거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과 ‘즐거움’을 대립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가장 안전할 때 가장 즐겁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동의’를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는 인간을 성적 존재이자 성적 주체로 바라 보도록 하는 포괄적 성교육에 기반한 동의 교육이 부재했다. 가정에서도 성에 대한 대화는 쉬쉬된다. 그 결과 우리는 상대의 욕구를 듣는 법 대신, 드라마와 포르노가 가르쳐준 ‘성적 각본’을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 그 각본 속에서 남성은 주도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다. 하지만 이는 성별 고정관념이 만든 연극에 불과하다.

이런 문제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왜곡된 온라인 성문화를 통해 성을 배운다. 동의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 대신 힘과 통제력, 지배성으로 점철된 성을 접하며 기성세대의 비뚤어진 성문화를 답습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가까이에서, 제대로, 허심탄회하게 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태도를 길러줄 교육이 필요하다. 그 출발은 청소년들에게 동의에 기반한 성교육을 꾸준히 실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돼’를 넘어서서, 나의 몸과 너의 몸에 부여된 권리를 이해하고 수평적으로 맺어지는 언어적·비언어적 소통의 면면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청소년들은 성이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되는 것’ 또는 ‘수면 위로 꺼내면 안 되는 것’이 아닌, 의사소통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관계 맺기의 한 방식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동의의 끝에는 즐거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과 ‘즐거움’을 대립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가장 안전할 때 가장 즐겁다. 신뢰와 존중이 전제된 관계에서야 비로소 자유로운 시도와 탐색이 가능하다. 폭력 위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에 반해 동의에 대한 소통은 더 안전하고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관계를 상상하도록 한다. 상대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어 시도할 수 없었던 행동과 도전을, 동의에 기반해 기꺼이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동의가 동사일 때, 그 형태는 가능성이다. 이제 그 가능성의 영토를 위해 전진해야 할 때다.

참고문헌: 한국성폭력상담소, ‘새로운 반성폭력·성문화 이정표, 적극적 합의’ 가이드라인, 2022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20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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