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겐남 넘어 ‘퍼포남’ 유행’…남성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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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10-17 11:31 조회22회 댓글0건본문
에겐남 넘어 ‘퍼포남’ 유행’…남성은 달라져야 한다
김태환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해외에서는 지금 ‘퍼포남’이 주목받고 있다. 퍼포남은 ‘퍼포머티브 메일(performative male)’의 줄임말로 번역하자면 ‘보여주기식 남성’이다. 즉, 여성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예술적 감수성, 진보적 가치관을 드러내 여성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남자를 뜻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줄 이어폰을 끼고 말차 라떼를 마시며 철학 서적을 읽는 모습이 전형적인 이미지다.

틱톡에서 #performativemale 해시태그는 9월 30일 기준 5천 개 이상 게시됐다.ⓒ틱톡 캡쳐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실제로 지난 8월 1일 미국 시애틀에서는 ‘퍼포남 경연대회’가 열렸고, 이후 뉴욕과 시카고 등 해외 여러 대도시에서 같은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틱톡에서 #performativemale 해시태그는 9월 30일 기준 5천 개 이상 게시됐으며, 관련 영상은 28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러한 흐름은 SNS를 타고 한국에도 빠르게 전해지고 있다.
퐁퐁남, 에겐남, 퍼포남
퍼포남의 등장은 흥미롭지만 동시에 조롱의 성격을 띤다. ‘퍼포남 경연대회’ 주최자인 란나 레인은 미국 방송사 Fox13과의 인터뷰에서 "퍼포먼스형 남성이란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페미니즘과 부드러움, 그리고 특정 음악을 소화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무엇을 입고 이야기하는지 전혀 모르는 남자"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결국 퍼포남은 ‘진짜 남자’가 아닌 가짜로 꾸며낸 기만자라는 뉘앙스로 소비되는 것이다.
이런 조롱은 낯설지 않다. 필자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때 직접 들었던 반응들과 겹치기 때문이다. 어떤 자리에서건 페미니스트라 소개하면 호기심 어린 시선이, 동시에 ‘남자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따라왔다. 가까운 남성 친구들로부터는 “연애도 잘하는데 굳이 페미니즘까지 할 필요 있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한국사회에서는 ‘남페미=여미새(여성에게 미친 새X)’라는 흔한 오해와 조롱은 늘 따라붙었다.
남페미로 10년 가까이 살면서 ‘퐁퐁남’, ‘에겐남’, 이제는 ‘퍼포남’까지 참 다양한 호칭을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마초적 남성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남성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사회는 이들을 신뢰하기보다는 의심하거나 조롱해왔다. 이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존중하는 남성이 드물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대적 요구는 무해한 남성성
세 가지 용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존중’을 실천하는 남자라는 점이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언행을 하고,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바를 존중하는 남성들이다. 즉,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들에게 기대되는 권위적이고 여성을 지배하려고 하는 전통적 남성이 아니라 부드러운 성격의 남성상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에서 '성별 수행 성(gender performativity)'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성별은 수행으로써 증명된다. 성별은 언제나 ‘행위’”라고 밝혔다. 성별은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특정한 역할과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구성되는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퐁퐁남, 에겐남, 퍼포남의 등장은 모두 새로운 남성성을 수행하려는 시도이자, 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어쩌면 남성성은 지금 이처럼 조금씩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퍼포먼스가 아닌 진짜 변화로
‘퍼포남’ 유행 이후 한국 여성 커뮤니티의 반응이 무척 흥미롭다. 많은 여성이 “그래도 서구 남성들은 적어도 시늉이라도 한다는 점에서 한국 남성들보다 낫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나 역시 남페미로 살아가지만 결코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배우고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분명한 것은 ‘가짜’라는 낙인을 벗겨내고 새로운 남성성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는 점이다. 퍼포먼스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실천이 가능할까. 먼저, 페미니즘적 삶을 시도하는 남성들을 향한 조롱이나 풍자를 멈추는 태도가 필요하다. 대신 여성들이 겪는 문제에 연대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변화는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가까운 남성 집단 안에서 작은 개입을 시도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예컨대 친구가 연애 중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다면 말려야 하고, 단체 대화방에서 성차별적 발언이나 여성 혐오적 이미지가 공유될 때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연인 관계에서도 실천의 공간은 많다. 애정을 표현하고, 일상의 가사노동을 기꺼이 분담하는 일은 성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여성의 말을 단순히 듣고 대답하는 차원을 넘어, 진심으로 신경 쓰고 함께 고민하는 태도 역시 관계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작은 실천이 쌓이면 변화는 현실이 된다. 여성 혐오적이고 성차별적인 남성 문화에 균열을 내는 것은 남성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균열이 하나둘 모여 새로운 남성 문화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퍼포먼스가 아닌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여성들이 말하듯 처음에는 어색해도 척이라도 하다 보면 더 이상 가짜가 아닌 진정한 ‘신남성’으로 바뀔 날이 올 테니.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20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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