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장제로 움직여온 권위주의 문화 이제는 바꿔야-이대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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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11-09 14:06 조회4,533회 댓글0건본문
가모장제로 움직여온 권위주의 문화 이제는 바꿔야
만남 / 김혜숙 이화여대교수협의회 공동회장
비민주적 재단 개혁해야 “명예총장이 그 핵심”
“학생들 트라우마 깊어… 심리치료 지원해야”
정유라씨 특혜 입학, 학사관리 의혹 진상규명 후 책임 물어야
이화여대교수협의회 김혜숙(62·철학과) 공동회장은 올해가 연구년이라 강의가 없는 데도 이대 사태가 터지면서 언론을 응대하느라 쉴 틈이 없어보였다.
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찾은 이대는 늦가을의 한적함 속에서도 폭풍 전야같이 고요했다. 김 교수는 “이대 사태는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교수들의 첫 번째 요구인 총장 사퇴는 이뤄졌으나 학사행정관련 의혹에 대한 본부의 해명은 오히려 의혹을 키웠다. 비민주적인 재단을 개혁해야 한다. 그 핵심은 명예총장”이라고 강조했다.
이대 사태는 끝이 아니라 시작
한국철학회 사상 첫 여성회장,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지낸 그는 이대 동문이자 교수로 개교 130년만의 첫 교수 시위를 주도했기 때문에 소회가 남다르다.
“87년부터 교수 생활을 했으니 30년째다. 이대의 상징적 장소인 본관이 그렇게 됐다는 것도 가슴아픈 일이다. 김활란 동상 훼손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대의 자기인식이 바뀔 때라고 본다. 우리는 상당히 전통을 중시하고, 가모장제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런 가부장 시스템이 권위주의 방식으로 작동돼왔다. 불통의 학내 상황 비판과 경찰 1600명을 부른 최경희 전 총장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사퇴를 요구했다. 또 한편으론 권위주의 문화가 이대에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수와 학생 사이, 총장과 학생, 보직자와 학생 관계 안에서 형성된 권위주의 문화를 다시 재정립할 기회가 된 것 같다.”
-가모장제 이대문화에 대한 지적이 인상깊다.
“학교를 위해 헌신한 여자선생님들에 대한 후배선생님들의 태도는 마치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것과 같다. 김옥길, 김활란 선생님 등을 넒은 품을 가진 어머니처럼 느낀다. 커뮤니티가 작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내가 교수됐을 때만 해도 250명정도 밖에 안 됐으니까. 여자와 여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권력과 권위주의가 가모장제다. 앞으로는 상당히 평등한 문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학생들이 보여준 성숙한 역량이나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총장 사퇴를 학생이 부르짖는 모습을 보니 그렇다.”
김 교수는 “이제까지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했고, 윤후정 총장 때만 직선제였다. 지금 교수들 사이에서 우리도 한 번 직선제를 해보자는 요구가 있다”고 전했다. 직선제 폐해로 대학이 정치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선 직선제를 해보자는 주장이 젊은 교수들 사이에서 나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간선제는 재단이 개입할 여지가 상당히 많아 걱정스럽다”며 “하지만 재단이 직선제를 선택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화학당 재단 이사회 개혁과 거버넌스 구조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화학당은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승인에서 고답적이고 진부한 비전을 노출했다. 이화를 퇴행적 역사 안에 묻어놓은 이사회에 21세기 이화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재단이사회는 상례를 벗어난 명예총장, 명예이사장 제도, 종신 이사를 허용하는 제한 없는 중임제도, 이사 연령의 무제한 등은 전근대적이다. 이화학당의 봉건적인 지배체제 개혁 없이 이화의 새로운 미래는 불가능하다.”
-총장 사퇴 요구를 어떻게 바라봤나.
“학생들이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화는 폐단이 많은 대학이다. 불통문화로 계속 상처를 받아왔다. 최 전 총장이 사범대학 교수라서 그랬을 수 있다. 사대문화는 스승과 학생간 관계를 강조하는 문화라 선생님 말씀에 토를 단다는 게 이해가 안 되고 학생들은 그런 게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 최순실씨 딸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의혹 등과 관련해 최경희 총장이 사퇴한 10월 19일 이대 본관 앞에서 열린 교수들의 기자회견에서 김혜숙 이대교수협의회 공동회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86일간의 본관 점거 운동으로 총장 사퇴가 이뤄졌다.
“학생들이 해산하면서 ‘우리의 승리’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교수는 이대의 주인이 확실히 누구인지 각인되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대는 학생들을 상당히 위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선생님들이 우리 애들이라고 감싸는 문화가 강한데 이번에 보여준 학생들의 역량이나 ‘느린 민주주의’로 명명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느린 민주주의는 굉장히 참신했다. 학생과 교수, 선배와 후배가 아니라 벗으로 서로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학생들의 주체의식이나 성숙한 민주시민의 모습은 학생들이 이대의 주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갈등도, 논란도 많았지만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것이 대단하다.”
김 교수는 “본관 점거 시위에서 학생들은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았고 다 대화를 통해 풀어갔다. 그래서 경찰을 1600명 부른 데 분노한 것”이라며 “남학생들처럼 소리치고 두드리고 발로치고 위압감을 느낄 수 있지만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교수·학생 간담회에서 ‘니네들 출구전략 짜야 하지 않느냐, 어떻게 할 거냐, 옆사람들 지겨워지는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는 압박이 가해졌을 때 학생들이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주고받을 게 없다. 우리가 나간다, 하고 딜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우린 딜할 게 없다, 취할 이득이 없다. 우린 이화 가치를 지키려고 거기 있는 것이라고 말하더라. 순수한 가치에 대한 순수한 책임감, 가치 수호를 하려는 순수한 의지. 이런 생각으로 오랫동안 뭉쳐 있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김 교수는 “여성들의 순수성이 세상에 대한 무지함에서 온 것이라 할 지라도 그런 학생들의 순수함에 대한 감동이 있다”며 “이번 이대 사태에서 주동자가 없다. SNS로 모인 학생들이다. 처음에는 수천명이 모여들었다”고 전했다.
▲ 이대교수협의회 김혜숙 공동회장은 “대학의 민주적 소통을 위해 교수평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새 총장 선출은 교수평의회가 마련한 총장선출 규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대학 민주주의 후퇴 보여준 이대 사태
11월 3일 86일간의 대장정을 끝맺음하는 의식으로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 ‘이화한마당’ 집회를 열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입학과 학사관리 의혹이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이화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김 교수는 “입학전형의 공정성과 철저한 학사관리는 이화의 전통과 명성을 버팀했던 핵심 자산”이라며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고 이화에 대한 신뢰를 이어가려면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던데.
“학생들은 여전히 경찰 조사 가능성에 노출돼 있으며 법적 처벌, 학칙상의 처벌, 개인 신상 노출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본관을 나왔다. 1600명 경찰력과의 충돌, 장기 농성과 그 과정 안에서 겪게 된 공권력과 학교본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깊은 좌절과 슬픔으로 학생들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적절한 치유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김 교수는 “대학의 민주적 소통을 위해 교수평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새 총장 선출은 학내 여론을 충실히 받아들여 교수평의회에서 마련한 총장선출 규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대 사태는 대학 민주주의의 후퇴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높다.
“우리 사회는 지금 먹히냐 먹느냐는 게임에 모두 휩쓸려 있다. 대학도 자유로울 수 없다. 프라임코어, 학군단, 이화 파빌리온 등 학생들이 반대해온 사업을 강행하면서 불통이 심각한 수준이다. 예전에는 실적에 대한 민감성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교수들이 소신 발언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은 교수 승진 시스템이 촘촘히 짜여졌다. 1년, 2년 단위로 실적을 신경써야만 다음 단계로 옮겨가니까 교수들이 무슨 발언하는 게 엄청 어려워진 사회가 됐다. 지금은 정말 젊은 선생님들이 발언도 못하고 연구실에서 한눈 안 팔고 논문 써야 된다. 대학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 것이 이대 사태였다.”
-대학을 이끄는 교육부 역할이 너무 약한데.
“우리나라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없어지는 대학도 생길 게 뻔하다. 도태되느냐 남느냐는 게임으로 진입한 것 같다. 그래서 학문의 자유니 순수성이니 기초학문이니 이런 거 얘기하는 게 상당한 사치가 되어버렸다. 분명히 쓰나미가 밀려오는데 우리는 그냥 안주해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니까 교육부로서도 뭔가 끌려고 하는 건데 그게 너무 설익은 방식으로 우리한테 주어졌다. 하여튼 국민의 세금을 쓰는 거니 잘 디자인해서 가야 한다.”
출처: 여성신문 201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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