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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인권과 종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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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5-10-21 11:25 조회5,9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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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인권과 종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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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 letter No.388 2015/10/20

 



 “인간은 종교적 확신을 가질 때 가장 철저하고 즐겁게 악을 행한다.”

 파스칼의 『팡세』에서

얼마 전 E대학 신학대학원에서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교회의 여목사를 모시고 공개 강연회를 개최했다. 공개 강연회 공지가 대학원 홈페이지에 나가자 동성애를 옹호하는 목사를 데려다 공개강의를 하는 데 대한 항의 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다. 강연회는 무사히 마쳤지만, 총장실 등 이곳저곳 들쑤시는 그들의 집요한 항의 전화가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최근에 ‘서울 인권헌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파기되기까지의 관련 자료들과 2015년 성소수자들의 축제와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았다.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고 방언을 하거나 울부짖으면서 기도를 하는 동성애 반대자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뜨거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독교의 동성애 혐오라는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있는 오늘날의 사회적, 종교문화적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들의 광기어린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신학적, 성서 해석학적 검토를 통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들이 꾸준히 해온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정통성을 이승만, 박정희를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개신교의 기여와 선민사상을 강조하고, 반공 이데올로기, 시장주의, 발전주의, 선진화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와 애국주의, 선민사상을 동성애 반대와 연결시켜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건강하고', '건전한', '대한민국 시민'으로부터 이른바 종북세력,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타자화, 병리화하고, 세금과 질병을 타자화의 무기로 사용하면서, 사회 혼란을 유발하는 타락의 근원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그들은 이를 위해 증거 없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2007년에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입법예고를 하였다. 그러자 법무부로 기독교인들의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허용법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기독교인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동성애 차별금지법안 저지를 위한 의회선교연합’이 만들어지고, ‘동성애허용법안반대 민간단체도 조직되었다. 결국 2007년도에 만들어지려던 차별금지법은 무산되었다.

이에 대해 항변하던 한국성적소수자인권센터 대표로 있는 한채윤의 말이 생각난다. “차별이라는 것은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저희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종교적 가치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차별의 허용을 결정하려는 태도였습니다.”

2014년 서울시 인권헌장의 제정과정에서 성소수자들은 2007년에 겪었던 아픔을 또 다시 경험해야 했다. 서울시는 시민위원을 공개모집한 뒤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해 지원자를 성별, 지역, 연령별로 분류한 뒤, 무작위추첨을 통해 10.5대 1의 치열한 경쟁으로 시민위원을 선발하였다. 그리고 150명과 전문위원 40명으로 구성된 시민위원회를 2014년 8월 6일에 발족하였다. 시민위원들은 토론하고 배우고 조율하면서 “서울시민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모든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관용의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라는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 5조> 등 인권헌장의 한 조항 한 조항을 만들어갔다.

그러던 중 인권헌장과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에 대한 반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9월 25일, 도하 7개 신문지면에 ‘박원순 시장님, 서울시민 대다수는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이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포함되는 것을 절대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전면광고가 일제히 실리면서부터였다. 신문지면 1개 면 전체를 도배한 광고에는 1~2차 시민위원회 회의 결과를 정리한 것 중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서울시민인권헌장은 동성애 조항을 넣기 위해 기획된 작품이라고 터무니없는 왜곡을 했다. 동성애가 에이즈 감염의 주요원인이기 때문에 에이즈 치료비용을 100% 국민세금으로 지원함으로써 국민들이 세금폭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 차별금지법안이 제정된 이후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이나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 징역에 처하는 등 엄벌한다는 것, 학교에서는 동성애에 대해 가르쳐야 하며 교육에 항의하는 부모가 수갑에 채워져 감옥에 보내졌다는 등의 아무런 근거 없는 정보를 유포했다.

 이 같은 내용은 이후 시민위원회와 권역별 토론회, 공청회장 그리고 동성애 혐오자 관련 단체들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도 일관되게 주장되었다. 광고는 10월 6일 조선일보 등에 또다시 실렸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민인권헌장>과 인권정책의 허상에 속지 마십시오’라는 제목의 광고는 박시장과 인권헌장을 겨냥한 비난이었다. 한 번에 수천만 원에 이르는 유력 일간지 신문광고를 한 두 개도 아니고 일곱 개 신문에다 연속적으로 광고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조직이 이 문제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첫 번째 광고가 실린 며칠 후인 9월 30일, 서울시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강남권역 토론회에서 100여명의 참가자 중 대다수는 토론회의 초반부터 행사를 방해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눈짓을 주고받으며 야유를 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쳤다. 진정시켜 토론을 하도록 했지만, 그들은 신문광고에서 제기된 주장과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이 와중에 박원순 시장이 샌프란시스코 출장 중 현지 언론과 인터뷰 한 “한국이 아시아에서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최초의 국가가 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기사가 10월 13일 국내에 소개되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10월 17일 서울시 성북구청에서 강북권역 토론회는 자리 배치를 가지고 소리를 지르고, 동성애에 대한 혐오발언도 거침없이 나왔다. 이날 공청회장을 방문했던 한 장애운동 활동가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현장의 참담함을 생생히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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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혐오에 대한 말들은 사람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공포스러웠다.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말도 사치였다. … 동성애만이 아닌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은 논의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인권도시에서 장애인은 어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가는 전혀 얘기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온 몸에 힘을 주고 거칠게 소리 지르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란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잔인했다. 무서웠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성소수자들…. 미안하고 … 아프고… 나도 장애인이라고 순식간에 멸시와 차별 혐오를 당해봤었지만 이렇게까지는…. 사람이 무섭다. 사람의 집단이 무섭다. 사람의 말이 무섭다. 사람의 신념 같은 행동이 무섭다. 사람의 당당함이 무섭다. 이 무서움을 일상처럼 매일 겪는 사람들이 있다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틀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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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인권헌장 제정 작업은 훌륭한 거버넌스의 전형으로 손꼽힐 만했다. 준비 작업까지 포함하면 1년 넘게 서울시와 전문가, 시민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갔다. 그러나 제6차 시민위원회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끝나고 난 뒤 이틀 후인 30일 일요일 오전, 서울시는 시민위원회에 알리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 입장에서 표결처리는 최종적으로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자연스럽게 폐기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먼저 시민위원회의 전문위원들이 서울시의 행동에 분노했다. 서울시의 일방적인 기자회견에 맞서 전문위원들이 사태를 정확하게 알리는 보도자료를 돌리고 전문위원 명의의 성명서도 발표했다. 성명서는 제6차 시민위원회는 45개 조항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45개 조항은 표결에 의한 합의로 확정하고 인권헌장을 채택한 것임으로, 예정대로 선포할 것을 촉구했다.

 존재를 부정하는 폭력 앞에서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던 성소수자들은 12월 6일 서울의 시청사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던 성소수자들이 한 명 두 명씩 몰려들기 시작했고, 수많은 시민과 시민사회가 동조 농성으로 연대했다. 해가 뜨면 신나는 문화축제로, 해가 지면 시장 면담과 사과를 요구하면서 밤샘 농성을 강행했다. 서울시청 로비는 순식간에 성소수자들의 일종의 해방구가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면서 닷새 만에 후원금만 3천만 원이 모일 만큼 전 국민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국제연대 활동도 전개해 각국의 언론에도 로비 점거농성이 중요한 기사로 보도되었다.

 12월 10일 오후 성소수자와 박시장의 면담이 이뤄지고, 이어 박시장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끝내 인권헌장 제정을 인정하거나 선포하지 않았다. 그날 밤 시청로비를 점거했던 무지개농성단은 농성을 밤새워 토론한 끝에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가 인권헌장을 채택하지 않음으로써 파생된 후유증은 간단치가 않다. 무엇보다도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부인됨으로써 그들의 존엄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로 인한 파장은 길고 확산 속도는 빨랐다. 당장 서울 성북구는 2014년 주민참여예산으로 선정된 성소수자 청소년 지원 사업을 불용처리 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 관련 사업들이 연속적으로 좌초됐다.

 인권헌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전문위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던 문경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권헌장은 손쉽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과 좌절을 극복하면서 한 장 한 장을 새롭게 써왔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역시, 너무나 순탄한 길을 갔더라면, 시민들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하나의 문서로만 남아 있을지 모른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 인권헌장은 역설적으로 더욱 주목을 받았고, 그것의 필요성 또한 더욱 각인되었다. 성소수자 운동이 획기적으로 성장하고 폭넓은 지지와 연대를 확산할 수 있었던 점 또한 인권헌장이 채택되지 않음으로써 거두게 된 예상치 않은 결실이다. 성소수자들은 무지개농성단의 서울시청 로비점거를 계기로 용기 있게 서울시민들 앞에 우뚝 섰다. 일반 시민들은 성소수자들의 존재의 무게와 존엄의 소중함을 새삼 인식하게 됐으며 지난 20년간 숨죽이며 조용히 성장해 온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인권헌장 사태를 계기로 그 역량이 훌쩍 자라며 단단해졌다.”라고.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되고 인권이 부서져가는 세상이 과연 신이 원하는 세상일까? 집요하게 폭력의 전위대로 활동하는 기독교인들을 떠올리면서 문득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내용이 생각났다. 아렌트는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악의 평범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대한 세 가지 무능성을 언급한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다. 세 번째의 무능성은 판단의 무능성, 즉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을 말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은 책임 윤리의 실종을 가져온다. 거기에서 타인에 대한 폭력이 생각 없이 무비판적으로 행해진다. 우리는 오늘날 그 폭력의 현장을 지켜본 것이다.


차옥숭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oksoong@hanmail.net
논문으로는 <소래 김중건의 삶의 여정과 사회 개혁 사상>, <동서 교섭의 관점에서 본 몸과 마음 이해-동학과 스피노자를 중심으로> 등이 있고, 저서로 《동아시아 여신신화와 여성정체성》(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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