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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삼국유사] (7)선덕여왕이 모란을 품은 뜻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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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4-05-10 10:32 조회7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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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삼국유사] (7)선덕여왕이 모란을 품은 뜻은

 

선덕여왕의 세 가지 예언 : 모란꽃 향기, 백제군사, 도리천

모란! 꽃 중의 왕, 선덕! 신라의 향기로운 여왕이 되다


먼저 선덕에게 보내온 당태종의 모란꽃 그림에 대해 선덕의 의중을 들어보자.

 

선덕의 모란꽃 속 벌나비들

 

모란꽃 그림에 그리지 않았던 또는 꽃 품 속에 있어 보이지 않던 

나를 따르던 벌나비들을 헤아려 볼꺼나

두 남편으로 지칭되는 진지왕의 아들이자 나의 숙부였던 용수 용춘 형제

 

그리고 나의 대신 을제 또한 남편이라 화랑세기는 말을 하지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신라 첫 여왕 선덕에게 남편의 이름이 중요할까

그들은 나의 신실하고 든든한 지지세력이자 정치 참모들

 

그 용춘의 아들이자 동생 천명의 아들 김춘추 목숨걸고 고구려와 당나라에 가 외교를 펼쳤네

그리하여 내가 닦아놓은 삼국통일 기반 위에 그 이름도 거룩한 태종 무열왕 나의 조카 춘추

 

무엇보다 김유신!

김춘추를 무열왕으로 만들고 자신의 동생 문희와 결혼시켜 몰락한 가야 후손으로 신라부터 통일한

나의 일등공신, 춘추를 ‘태종’ 무열왕이라 하여 ‘당태종’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공적

 

‘김유신’같은 신하를 두었던 덕분이라 중국도 승복한 나의 영웅 

삼국통일의 실질적 주인공이요 왕과 왕실의 보호자같은 존재여 나에게 사천왕처럼 든든하고 믿음직했던 장군

백제가 침략해올 때 세 번이나 집에도 못 들르고 다시 전장터로 뛰어나갔던 나의 유신이여

 

선덕은 왕이 되자마자 시작해 3년 만에 분황사(芬皇寺)를 짓고 태종이 보낸 그림에 멋지게 답한다. 

‘나 선덕의 향기, 향기로운 황제 분황(芬皇)의 절’이라 이름한 것이다.

 

이듬해에는 ‘신라의 미소’라 불리는 수막새로 유명한 영묘사도 새롭게 낙성하였다. 

선덕여왕에게는 특히 영묘사와 관련된 일화가 많다. 영묘사 장육존상 조성, 백제군 침략을 알리는 영묘사 옥문지의 개구리울음, 짝사랑 지귀가 마음의 불로 자신과 탑을 불사른 것도 또한 영묘사였다. 영묘사는 여왕에게 어떤 절인가.

 

선덕의 영묘사 노래

 

기억하는가

모례의 여동생 사씨가 신라에 처음 짓고 비구니가 된 비구니 절

법흥왕의 부인도 묘법이라 이름짓고 비구니가 되었던 유서깊은 전불시대의 칠처가람

그 중 두 번째 절 영묘사

나는 그 절 신령스러운 사당 영묘사에서 백제 군인이 쳐들어온 것을 알았고

짝사랑 지귀의 불타는 마음도 받았고 혜공스님이 밧줄로 동여 불 끄는 신통력도 보았네

신령하고 오묘한 여인의 절 영묘사 많은 가르침과 훌륭한 비구니 조상들께 영감을 받았네

 

632년 즉위하고 최초의 여왕으로 너무 많은 힘을 쏟았던지 병이 난 여왕은 신라 불국토 구축에 힘쓴다. 즉위 다섯 해째 황룡사에서 병을 치유코자 인왕 백고좌법회를 열고 백 명의 스님들을 출가하도록 허락한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법흥, 진흥, 진평 등 선왕들을 이어 차근차근 신라의 불국토를 정비해 나간 것이다. 여왕의 16년 통치 기반을 다진 ‘불국토개발 1차 5개 년 계획’이라 할 만하다.

 

여성의 생명성, 직설 화법으로 남성을 품고 삼국을 품다


같은 해 637년 5월 때마침 여왕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줄 기회가 찾아왔다. 멋모르는 백제군 오백 명이 선덕의 예리한 정보망에 잡힌 것이다. 선덕의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세우고 지켜왔던 영묘사, 그 안의 옥문지라는 연못에서 며칠씩 울던 개구리 울음소리가 힌트였다. 예로부터 개구리는 왕권이나 신성의 상징이라 금와왕도 금개구리 모양이었다. 경칩에 일어나 풍년을 점치던 개구리 떼가 때아닌 오월에 시끄러울 때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음을 여왕은 알아차린 것이다.

 

오백이나 되는 군사들이 몰래 숨어있다 해도 창이며 칼, 군복을 입은 무리들이 지나온 표시와 흔적은 밟히고 다친 천지만물은 이미 알고 있는 일. 보통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다 해도 그것을 굽어본 천지신명과 그 계곡에 사는 개구리들, 그리고 ‘용봉(龍鳳)의 자태와 태양(太陽)의 위용’을 갖춘(화랑세기) 선덕은 그 기미를 놓칠 리 없었다. 바로 백제군 500명과 그 뒤에 따라오던 후진 1,200명까지 일망타진한 쾌거,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덕여왕의 여근곡 노래

 

마침 숨은 곳이 여근곡이라니 쾌재로다

공주일 적에도 내 왕위 계승에 불만을 품었던 칠숙과 석품이 있었다네

이제 앞으로 당태종이든 그 누구이든 나를 여왕이라 우습게 여기지 못할 절호의 기회

‘옥문지’와 ‘여근곡’이라니..

 

직설적이다 못해 노골적 지명으로 여왕을 능멸하려 하면 그 여성성

그대들에게 어떻게 적군을 무찌르는지 낱낱이 가르쳐 주리

 

남녀의 음양과 오행의 이론 정도면 충분하였지

남자는 양이고 여자가 음이라 하였겠다, 오행을 나타내는 오방색 중 흰색은 서쪽을 뚯하느니

마침 여성을 상징하는 여근곡이 서쪽에 마침내 여근에 들어온 남근 백제군들,

이제 어쩔텐가

제 발로 들어와 제 무덤을 파고 전멸될 순서를 기다린 꼴 그 참혹한 결과를 보고서야

남자인 것만이 벼슬인 몇몇 못난 신라 남성들 코가 납작해졌으리니

 

그렇다면 여왕이 생각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은 어떤 것인지 들어볼 차례.

 

선덕의 사랑 철학


일부 용렬한 남성들이 무시하고 하대해 온 여성성

알고 보면 남성이 기필코 도달해야 할 필생의 이상향이 아니던가

여성은 공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사랑하고 목숨바쳐 달려가고 싶은 생의 목적지

애초에 남성성과 여성성은 경쟁 상대가 아니라 서로 만나 아껴주고 보듬어 생명을 잉태하는 존재들

백제군사가 여근 골짜기에서 공격하려다 전멸한 것을 본 남성들이여

결론은 어떻든가, 여근곡에 들어선 순간 그대들 항복 아니면 죽음뿐일세

 

선덕은 이렇게 백제군과 신라 남성을 여성성으로 품어내고 세계 만방에 모란의 향기로 승리를 장식했다. 

그 이후 수많은 전쟁과 위기 속에서 훌륭한 남성들을 거느리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선덕의 노래를 들어 보자.

왕실과 관료들만 선덕여왕을 위하고 사모했던 것만은 아닌 대표적 여왕을 사랑했던 지귀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귀의 사랑에 답함


여왕을 짝사랑해 화신(火神), 불귀신이 되고만 지귀여 그대만이 나의 매력을 알아보았으리

당나라 왕이 되었어도 몰라 본 나의 천겹만겹 여문 모란 봉오리 속정을

그대는 온몸을 불사르며 꿰뚫어 보았구나

 

간혹 그대를 인도설화 속 술파가 이야기라고 흠잡는 무리들이 있다지

정녕 죽을 만큼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지귀든 술파가든 그 이름 그 나라 무엇이라도 개의치 않지

짝사랑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용렬한 남정네들이여

나에게 술파가란 진짜 사나이 짝사랑 지귀를 하나 더 보태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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