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장미 운동’의 급진화… 응원봉을 의사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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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3-21 10:36 조회19회 댓글0건본문
‘빵과 장미 운동’의 급진화… 응원봉을 의사봉으로
극우 정치 노골화된 세계 속 3·8 세계여성의날 ‘페미니스트의 반격’
한국에선 여성 1만인 선언… 여성 대표성 고민 한발 더 나아갔다
흥미로운 건 선언을 준비한 장혜영, 박지현, 권김현영, 김혜정이 어떻게 모였느냐다. 그들은 여성 정치인들이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공격받고 반페미니즘 정서가 표로 결집됐던 지난 대선과 총선을 지나면서 “다시 뛰는 여성 정치를 염원하고 응원”하기 위해 결성된 러닝 크루인 ‘다시 뛰는 여성 정치’ 멤버들이다. 그러니까 ‘선언’은 여성 대표성 문제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이에 여성계를 비롯해 1만 명 넘는 여성 시민이 공감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국내외적으로 이토록 복잡한 대중정치의 지형에서 도대체 여성 정치란 무엇일까? 혹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 질문을 곱십으면서 나는 이번 3·8 여성의 날 광장에 등장했던 “응원봉을 의사봉으로”라는 구호에 대해 생각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와 2016년 촛불광장을 지나오면서 청년 여성은 그 어느 때보다 대중정치에서 중요한 행위자이자 동인이 됐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계속 주변화돼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025년 여성의 날에 발표한 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크고, 손에 꼽힐 정도로 여성이 정치적으로 과소대표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틀에 한 명씩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다. 여성들이 응원봉을 든 것은 독재자의 꿈을 꾼 한 명의 성차별주의자를 끌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여성혐오를 팔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그 구조 자체를 뒤집기 위해서였다.
‘남태령 대첩’ 만들고 ‘말벌동지’ 된 사람들
중요한 건 그 응원봉이 ‘청년 여성’이 아닌 ‘민주 시민’의 상징임을 이해하는 일이다. 제1553호 한겨레21에서 ‘체제전환운동’의 미류 공동조직위원장은 중요한 관점을 제안한다. 그는 응원봉 광장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말하며 발언하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정체성만 읽어서는 안 된다”며 이를 “배제된 자들이 광장의 보편자라는 선언”으로 읽어야 한다고 썼다. ‘2030 여성’을 “연령과 성별의 표식으로 읽는 대신 새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는 모두의 얼굴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건 실제로 응원봉을 들었던 이들이 ‘남태령 대첩’을 만들어내고 ‘말벌동지’가 되어 다양한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각자의 방식으로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일하게 고정돼 있지 않은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에 때로는 불안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발 딛고 서서, 자신들이 경험한 주변적 위치로부터 타인의 주변적 위치를 읽어내고 그쪽으로 손을 뻗는 힘을 기르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정체성에 뿌리를 내리되, 유연하게 정치적 입장을 이동해 가는 “루팅 앤 시프팅”(Rooting and Shifting, 니라 유발 데이비스)의 정치를 실천 중인 것이다. 이는 정체성조차 상품으로 팔아버리는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 체제를 전환하는 보편 정치로의 분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여성 정치’, 하나의 길은 아니지만
물론 응원봉 광장의 ‘여성 정치’가 급진적 보편 정치로만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쪽에선 외국인을 배제하는 떡볶이 나눔이 등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차별금지법 반대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한 차례 (고색창연한 전통 극우로부터 태어나 네오 극우의 자양분이 된) 우파 여성 대통령의 실패와 탄핵을 경험한 바 있다.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건, 우리가 고통 속에서 배운 다디단 교훈이다.
‘의사봉’은 ‘응원봉 정치’가 나아갈 여러 길 중 하나이며,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경로를 따라 어떤 의사봉이 될지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대선 정국으로 휘말려 들어가겠지만, 응원봉이 키운 의사봉에 대한 이야기가 속도전이 아니라 질적인 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손희정 시사덕후·문화평론가( 출처: 2025.03.15, 한겨례21 ‘빵과 장미 운동’의 급진화… 응원봉을 의사봉으로). 202020 3-15 25-03-15 202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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