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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의 연립방정식] 분단이 만든 발전주의와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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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08 15:25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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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의 연립 방정식]  분단이  만든  발전주의와  여성혐오

한국 사회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했지만 그중 72년을 분단된 채 살아왔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분단국으로 존재했기에, 많은 시민은 분단의 영향을 체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단은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특히 여성에게는 더 큰 악영향을 끼쳤다. 이대학보는 지난달 26일 우리대학 김보명 교수(여성학과)와 박민주 교수(통일학연구원)를 만나 ‘분단과 여성’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분단이 만들어낸 발전주의와 소수자 혐오

분단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특성으로 박 교수는 경쟁주의와 발전주의를 꼽았다. 그는 ‘죽을 만큼 일할 필요는 없는데, 왜 우리는 인권을 뒤로 밀어내면서까지 경쟁하는가’를 고찰했을 때, “분단 이후 벌어진 남북 간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극단적인 경쟁주의를 실천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발전주의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국가 주도적인 경제 발전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박 교수는 무비판적인 발전주의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국가는 하나의 군대이자 병영이기에, 언제든지 일사불란하게 질서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 또한 발전주의가 한국 사회의 경쟁적 정체성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국의 발전주의가 정당화될 수 있었던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북한보다 빨리 경제를 성장시켜 북한의 남침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경제 성장이 중요해지며 억압적인 군사주의 정부가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이는 과거 일본 식민주의를 청산하지 못하는 명분이 됐다.

두 교수는 21세기 한국에서 분단으로 인해 두드러지는 현상에 공통적으로 ‘혐오’라고 답했다. 박 교수는 미국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말을 인용하며 “혐오라는 감정은 갈등 상황에서 적에 대한 불안감을 잊기 위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가까이 있지만 실제로 체감하기는 어렵기에, 그에 대한 혐오는 주변의 다른 존재에게 투영된다. 

 

김 교수는 분단 이후 전쟁은 한국 사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남한의 서로 다른 존재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망하게 할’ 퀴어 혹은 페미니스트, 이주민과 중국인까지, 분단은 내부의 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분단으로 인한 경쟁적 사회 분위기는 사회를 경직적으로 만든다. 경직된 사회는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고, 오직 ‘남보다 나은 삶’만을 꿈꾸게 한다. 박 교수는 “(한국이) 분단되지 않았다고 상상해 본다면,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성적 지향이 어떻든 삶이 훨씬 자유로웠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분단에서 파생된 ‘남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미묘한 경쟁은 결국 젠더 측면에서 가장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억압적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성별분업을 제도화한 분단

분단은 한국 사회의 시민권 모델이 남성 중심적으로 설계되는 데 크게 작용했다. 김 교수는 특히 징병제가 이에 큰 역할을 했다고 꼬집었다. 군인을 강제로 징발하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하기에 남성에게 노동 시장의 특권을 부여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성 군인이 노동력의 기본으로 여겨지면서 생계부양자 혹은 가부장이라는 남성성이 등장했고, 그 과정에서 여성은 보호의 대상 혹은 돌봄 노동자의 역할을 부여받아 성별 분업이 제도화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징병제의 주체인 국가가 별다른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한국 남성들이 노동 시장에서의 특권으로 박탈감을 상쇄하려는 사고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평했다. 노동 시장이든 섹슈얼리티 영역이든, 국가가 아닌 다른 집단으로부터라도 징병제의 보상을 받겠다는 심리다. 

 

군 가산점제 논의가 계속해서 부활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 결과,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래 매년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차지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2%로, 회원국 평균인 12.1%보다 약 2.5배 높다. 박 교수 또한 “노동 시장에서의 여전한 임금 격차도 분단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성별 분업이 뚜렷한 한국에서, 경제 발전에 의한 노동 과중은 여성에게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박 교수는 “여성들은 임금 노동 뒤에도 집에서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을 비롯한 재생산 노동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돈도 벌고 애도 보고 남편도 뒷바라지하는 ‘트리플 롤’이 한국에서는 유독 여성들에게 가중됐다는 것이다.

분단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성에서 여성은 지워졌다. 박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를 ‘반쪽짜리 민주화’라고 표현했다. 빠르게 이뤄진 한국의 민주화는 성평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가 하나 돼야 했던 한국의 민주화 특성상 다양성 의제가 포섭될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성의 가장 큰 범주인 젠더가 소외됐다”고 말했다.

통일 후, 건강한 사회를 꿈꾸기 위해서는


통일이 이뤄진다고 해서 여성혐오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독일 통일 사례에서도 통일의 최대 피해자를 ‘동독 여성’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1989년 통일 이후 국가의 지원을 잃은 동독 기업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먼저 취한 조치가 여성 해고였기 때문이다. 1995년에는 동독 지역 전체 실업자 중 63.7%가 여성이었고, 통일 10년 뒤에도 동독 여성의 실업률은 19.8%를 기록했다. 

 

박 교수는 남북의 단순한 물리적 통합뿐 아니라 법률, 행정 등이 하나로 합쳐지는 제도적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했을 때, “북한 여성들도 비슷한 어려움에 처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통일된 한국 사회의 계층화가 더욱 심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여성혐오는 북한도 마찬가지이기에 해당 문제가 남북한을 교차하며 발생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여성 인권의 마지노선은 북한”이라며 “여성 인권은 특히나 최하위선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선진국에서 여성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도, 밑바닥의 열악한 인권이 함께 올라가지 않으면 여성 인권은 언제든지 다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례로 2020년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기형 태아의 임신중절을 위헌으로 결정했고, 그로부터 2년 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임신중절권을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해 여성의 재생산권이 연쇄적으로 부정된 일을 들었다.

김 교수는 통일 이후를 말하기 전에 북한 이탈 주민 여성의 삶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북한 이탈 주민은 한국에서 없는 듯 살아가는 존재”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경험일지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북한인들의 타자성을 인정하고 배우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박 교수 또한 “북한 여성을 아는 것을 통해 나와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 : 이대학보(https://inews.ewha.ac.kr)202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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