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참아카데미] 이중표 교수-불교의 이해와 실천9. 보살의 서원(誓願) (3/19) > 행사갤러리


행사갤러리

행사갤러리

[2019 참아카데미] 이중표 교수-불교의 이해와 실천9. 보살의 서원(誓願) (3/19)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03-22 15:52 조회1,327회 댓글0건

본문

[불교개혁행동 '참'아카데미] 

 

2019년을 맞이하여 붓다의 참된 가르침을 배우고 토론하는 자리

 

 

이중표 교수와 함께하는

불교의 이해와 실천 

 

 

 

 


[9강] 보살의 서원 (誓願)

 

 

 

1627057b2614137a990eed29680e4f96_1609907380_2026.jpg
1627057b2614137a990eed29680e4f96_1609907380_3391.jpg
1627057b2614137a990eed29680e4f96_1609907380_4768.jpg
1627057b2614137a990eed29680e4f96_1609907380_6283.jpg
1627057b2614137a990eed29680e4f96_1609907380_7603.jpg
1627057b2614137a990eed29680e4f96_1609907380_9056.jpg
 

 



대승불교가 초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가

지난 시간 다루어 보았습니다.

아상을 버림으로써

우리가 본래 생사가 없는 하나의 생명임을

자각하고 살아갈 것을 이야기하는 대승불교에 대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자세히 살펴봅니다.



 

노력, 정진의 의미로 원(願)도 목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욕탐과 다르지 않으나 지향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욕탐은 무지와 욕탐에 의해 형성된 거짓자아(오온과 십이입처)를 유지시키기 위한 의지이다. 

오취온은 무상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유지될 수 없기에 욕탐에는 본질적으로 만족이 있을 수 없다. 

 

원(願)은 욕탐에서 해탈한 의지로, 오온은 무상하여 잠시도 유지될 수 없음을 자각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삶의 의지이다. 

무아의 체득에서 비롯된 의지의 참모습으로, 욕탐에 의해 취착된 자아를 멸진한 현존이 일으키는 삶의 의지가 '원'이다.

 

우리가 작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가 현존이며, 불교적인 표현으로는 무아와 공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죽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진정한 열반은 모든 중생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려는 원을 가지고 살아갈 때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금강경의 대승정종분은 이와 같은 대승불교의 원을 잘 보여준다. 

 

'대승정종분'에서 

"보살의 길로 함께 나아가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실천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가?" 

라는 수보리 존자의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보살은 일체중생을 우여열반에 들게 하여 모두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부처님께서 가르친 불교의 취지가 아비달마불교에서 지향하는 아라한(개인적인 성취)이 아니라,  

모두 함께 깨우쳐서 일체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삶, 보살승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고,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여도, 사실은 어떤 중생도 열반에 들어간 중생은 없다.

왜냐하면 보살에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생긴다면, 그는 보살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부처님 말씀은 <잡아함경(306)>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잡아함경(306)

시각활동과 형색을 의지하여 시각으로 분별하는 마음이 생긴다오. 이들 셋이 만나는 것이 경험(촉)이라오. 

경험과 함께 느끼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의도하는 마음이 생긴다오. 

이 네 가지 무색음과 시각활동과 형색, 이것들을 사람이라고 부르고, 이것들에서 사람이라는 관념을 만들고,

중생, 나라, 마토사, 마나바, 사부, 복가라, 기바, 선두라는 관념을 만든다오.

 

그리고 이와 같이 말한다오.

"내(오온으로 만든 자아)가 눈으로 형색을 보고, 내가 귀로 소리를 듣고, 

내가 코로 냄새를 맡고, 내가 혀로 맛을 보고,

내가 몸으로 촉감을 느끼고, 내가 마음으로 사물을 분별한다." 그것은 언어적인 표현이라오.


이 경에서는 우리가 '자아'라고 생각하는 '오온'의 실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오온을 자아로 취하고 있는 우리의 생각,

즉 아상(相)이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르쳤다.

 

오온을 자아로 생각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삶은 괴로운 사실이며,

오온을 자아로 생각하는 망상 (=아상)은 불교에서 소멸해야 할 괴로움이다. 

위 경의 내용은 이러한 '아상'이 남김없이 사라진 것을 '열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생들은 수명이 유지되는 동안 '자아'가 감각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고 이름까지 붙이는데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무여열반에 들게 하는 것이다.

아상이 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아상을 버리는 것이 열반일 뿐,

중생들이 생사를 벗어나서 들어가야 할 열반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수많은 중생들을 무여열반에 들게 하여도, 열반에 든 중생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중생들은 자아로 인해 태어나서 죽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가 태어나서 죽어갈 세계가 이싸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자아는 죽은 뒤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이러한 모순 대립이 생기는 데 

이는 모순된 견해를 취하지 않는 부처님의 위대한 침묵, '무기'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맛지마 니까야 72. 악기왓차곳따에게 설하신 경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무엇을 의지하여 타고 있는가?'

'그 불이 눈 앞에서 꺼진다면, 이 불이 내 앞에서 꺼졌다.'라고 알 수 있겠는가?


 

없던 불이 생겼을 때, '이 불이 어디서 왔는가'라고 묻거나,

타던 불이 꺼졌을 때, '이 불이 어디로 갔을까'라고 묻는 것이 부당한 물음이듯이,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으며,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이다.

 

연료에 의지하여 타고 있는 불과 같이, 우리의 몸은 섭취한 음식에 의지하여 타고 있는 불꽃이고,

우리으 마음은 경험이라는 음식과 의지와 생각이라는 음식과 분별이라는 음식에 의지하여 타고 있는 불꽃이다.

 

 

 

 

 

 

아상을 버리면 생사 윤회는 사라진다.

중생들은 본래 자신이 생사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아의 망상에 사로잡혀서 꿈꾸듯이 생사의 고통을 받고 있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실제로 제도할 중생이 있어서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제도할 것이 없는 중생을 꿈에서 깨어나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지만 실제로 구제를 받은 중생은 있을 수 없다.

 

 

*출처: 이중표 교수와 함께 하는 '불교의 이해와 실천' 자료집 pp.73-78 및 강의 내용 참고

 



 

9938484F5C47D6A125E36F

 

 

불교개혁행동 담마발전소 ‘참아카데미’에서 2019년을 여는 첫 강좌로 ‘이중표 전남대 철학과 교수와 함께하는 불교의 이해와 실천’이 개강했습니다. 우리함께 빌딩 2층 문화살롱 기룬에서 1월 15일부터 3월 26일까지 설연휴를 제외하고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열립니다.

 

 

이중표 교수는 초기불교 전문가이면서 대승불교 경전을 바탕으로 다양한 강의를 통해 붓다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열린 토론과 함께 소중한 도반들과 만나는 뜻깊은 시간을 가집니다.

 

 

총 10강으로 마지막 강의까지 빠지지 않고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득이하게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서

불교아카데미 / 불교개혁행동 영상을 업로드할 예정이니 지속적인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

 

강의 공지 ▼

http://cafe.daum.net/bsge/dyOX/38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종교와 젠더연구소서울 중구 동호로24길 27-17 우리함께빌딩 3층Tel. 070-4193-9933Fax. 02-2278-1142

COPYRIGHT ⓒ 종교와젠더연구소 ALL Rights reserved